사상교당 강려헌 교도
사상교당 강려헌 교도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발심 입지(發心立志)의 특신급, 입교 5년차 사상교당 강려헌(姜呂憲·51) 교도. 요즘 그는 교전의 표현 그대로 마음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모든 사업이나 생각이나 신앙이나 정성이 다른 세상에 전혀 흐르지 않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지극한 서원과 정성이 나에게는 얼마나 있는지 저절로 돌아보게 된다. 

“교무님께 매달렸다는 표현이 맞아요. 하루 종일 수시로 교무님께 문자를 보냈고 밤이 늦어 문자를 보낼 수 없을 때는 아침 7시가 되기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거렸습니다. 그동안 제가 교무님을 많이 괴롭힌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오직 공부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사상교당 은혜나눔 바자회에 자원봉사하러 오라는 친구의 권유로 처음 원불교에 발을 디뎠고 친구가 불쑥 내민 종이가 입교원서인지도 모르고 적었다. 이후 법명이 나왔으니 교당에 오라는 말에 마음속이 ‘쿵’하고 울렸다. 이제 큰일 났다는 생각으로 2018년 1월, 그의 나이 48세에 법명을 받으러 처음으로 원불교 법회에 갔다.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엄중한 일이니 예의를 표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 같아 그 자리에서 한 달에 한 번 법회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것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출발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출석하는 초보 교도인 그에게 당시 사상교당 박진성 교무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를 이끌었다. 교당 봄나들이, 교도 정기훈련, 성리법회, 교역자 훈련 등 수시로 안내하며 참가를 권했고 그는 무조건 다 따랐다. 왜? 교무님 말씀이니까. 특히 배내청소년수련원에서 열렸던 교도 정기훈련을 잊을 수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랐던 불교나 기독교라는 종교와 원불교는 매우 달랐다. 막연하게 저 멀리 하늘에만 있을 것 같은 종교가 어쩌면 자신의 삶이자 일상일 수 있다는 의문에 설렜다. 

“식당에서 재가출가 교도가 한꺼번에 섞여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다닌 절에서 스님은 잠깐 얼굴만 보여주고 특별한 곳으로 사라지는 먼 분이었고 설법 말씀은 너무 어려워 알아들을 수가 없었거든요.”

절이나 교회에서 들었던 설교는 신앙과 현실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의문을 풀 곳이 없었다. 들을 때는 좋은 말씀인데 현실은 따로 놀았다. 그의 목까지 차오르는 의문, 그 의문을 풀어줄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목마름이 늘 그를 휘감고 있었다. 
“종교와 삶이 다르지 않다고 들렸습니다. 제가 잘못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교당에 더 자주 가야겠다 결심한 때가 교도 정기훈련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장전동에서 사상까지 7살짜리 늦둥이를 데리고 시내버스로 1시간 거리를 매주 한 번도 안 빠지고 법회에 참석했다. 뜨거운 여름날이든 비바람 치는 악천후든 교당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렇게 행복했다. 교당에서 듣는 교무님 말씀은 종교가 하늘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내 마음’의 이야기였다. 

그는 ‘종교가 삶으로 들어왔다’는 표현을 썼다. 매주 교무님 설법을 통해 만나게 되는 현실 속 종교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어 하나라도 놓칠까 온 마음을 다해 집중했다. 

그런 그를 옆에서 지켜본 박진성 교무는 그에게 교당 공식 밴드에 매주 공지사항을 올리며 밴드를 관리해보라는 임무를 맡겼다. 아직 입교 1년도 채 되지 않은 햇병아리 교도였던 그는 혹시나 교당에 폐를 끼치게 될까 썼다 지우고를 반복하며 밴드 공지에 정성을 쏟았다. 

주로 법회 설법 말씀을 요약하는 일이어서 혹시나 잘못 전달될까 싶어 설법을 녹음했고 무슨 말씀인가 다 알아들을 때까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씩 걸려 밴드에 올리고 나면 ‘법회를 다시 보는 듯 생생하다, 결석 했는데 너무 다행이다’등의 칭찬 댓글이 줄을 이었다. 

법회 내용뿐만 아니라 행사 사진, 교도들의 동정 등 교당 살림살이가 샅샅이 담긴 밴드는 해마다 1년 치를 묶어 밴드북으로 탄생됐고 사상교당의 역사가 고스란히 책으로 남았다. 

“2년을 꼬박 밴드 공지를 하다 보니 힘은 들었지만 너무너무 즐거웠습니다. 교리를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와 공부하는 즐거움, 제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붙은 습관이 교무님께 폭풍 문자 보내기다. 처음엔 낯선 단어에서 시작됐지만 공부를 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고, 더 깊이 알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질문을 보내면 그때마다 친절한 답이 날아왔다. 밤이 깊어 실례될까 문자를 보낼 수 없을 때는 빨리 새벽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수십 수백 번이다. 
 

발심입지, 
모든 생각이나 정성이 
오직 교당에만

그러다 코로나19가 왔고 그 좋아하는 교당에도 갈 수 없게 됐다. 집에 있는 동안 교사를 읽어보라는 교무님의 권유에 그는 아예 교전 전체를 읽어보기로 했다. 교전을 읽으면서 교무님과 함께하는 문답감정은 브레이크가 없는 바퀴처럼 더욱 세차게 굴러갔다.

교당에 가지 못했지만 그는 매일 교당에 앉아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교전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글자 한 자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마치 수험생이 수능 공부하듯이 읽었다. 그 다음은 좀 더 천천히 읽고 싶어 공책을 펴서 한 자 한 자 사경을 해 다섯 권의 공책으로 남았다. 코로나19로 외출하지 못하는 1년을 밥 먹는 일 외에는 온 종일 교전에 빠져서 보냈다. 

“제 인생에서 이렇게 감동적인 책은 처음이었습니다.” 교당에 오면 지낸 일을 일일이 문답하는데 주의하라는 교당 내왕 시 주의 사항이 특히 좋았다. 교무님께는 교리 공부만이 아니라 마음에 일어나는 고민도 수시로 상담하며 일기 문답까지 모든 분야를 망라했다. 

“첫 교무님은 다 그런지 몰라도 저에게 교무님은 굉장히 큰 분입니다. 저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고 힘들 때 중심을 딱 잡아주시는 등대 같은 분이지요. 제가 바로 나무토막이더라구요.”

그는 ‘목수에게 맡겨진 나무토막처럼 사심이 없어야 좋은 목침이 될 수 있다’는 대산종사님의 말씀이 바로 자신을 향한 말씀이라고 비유했다. 스승을 만났을 때 온통 믿고 맡기라는 법문을 알기 전에 이미 그가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 

이제 혼자서 기도하는 법도 알아 매일 아침에 40분, 저녁에 60분 기도 누적일이 스마트폰 바탕화면 기록으로 590일을 넘겼다. 개인 밴드를 개설해 설법, 교무님과의 문답감정, 정기일기, 상시일기 등 수행 과정도 꼼꼼히 기록해가고 있다. 

“늘 기도하고 공부하는 모습이 가족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남편과 아이까지 모두 입교해 함께 교당에 다니니 행복합니다. 원불교는 저에게 힘을 주는 충전소입니다.”

[2021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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