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규 교도
허승규 교도

[원불교신문=허승규 대표] MZ세대들이 종교를 멀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세대들이 실존적으로 고민하는 문제에 기성 종교들이 해답을 못 주기 때문이다. 결혼, 취업, 성평등과 같은 문제들에 있어서 기성 종교는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 

낙태죄 폐지나 성소수자 쟁점에서 일부 기성 종교인들은 문제의 핵심을 전혀 못 짚고 종교적 아집에 갇혀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다가올 시대를 내다보고 교법을 펼쳤다. 원불교가 시대를 선도하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최소한 뒤처지진 않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일부 기성 종교의 행태를 보라. 제일 안 좋은 일은 사회적 압력에 의해 원불교가 변하는 것이다. 원불교는 대(大)와 체(體)가 강하다. 교법을 사회적으로 풀어내는 소(小)와 용(用)에서 분발해야 한다. 앞으로 교단이 고민해야 할 여러 의제 가운데 두 가지만 의견 드리고 싶다. 

첫 번째, 노동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이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청년 교화와도 연결돼 있고, 교단과 관련된 일을 하는 재가교도들에 대한 이해와도 연결돼 있다. 종교계에서 노동에 대한 이해가 낮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노동윤리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문제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쟁점이다.

원불교 교단은 출가자들의 생활을 공동체가 책임지는 공동경제 시스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인 노동·계약 관계와 다른 원리다. 

교단 바깥세상은 다르다. 보통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한다. 교단에서 일하는 재가 교도들을 사회적인 잣대로 보면, 교단은 일터이자 노동의 공간이다. 종교단체라는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최소한의 사회적인 기준으로 교단 내 일터와 노동의 공간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유능하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재가 교도를 양성하는 일은 우리 교단의 오랜 과제다. 문제가 반복된다면 제도와 문화, 시스템을 봐야 한다.

시스템의 문제를 다룰 때, 원인과 진단을 모두 신심 여부로 끌고 가는 것은 쟁점을 잘못 짚은 것이다. 모든 교도가 당장 여래위의 심법이 될 수 없다면, 제도는 보통 사람들 수준, 사회적 수준을 고려해 설계돼야 한다. 신심만 지나치면 시스템을 놓치기 쉽고, 종교를 되레 망칠 수 있다.

두 번째, 평화 담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평화 담론이 지나치게 민족주의나 통일지상주의로 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통일은 평화의 하위 명제다. 평화와 통일은 같은 선상의 용어가 아니다. 

통일은 평화라는 수단 가운데 하나다. 남북문제를 접근할 때, 남북통일이란 명제를 내려놓고 보편적인 동아시아 평화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 냉전반공주의만큼 통일지상주의도 과거 패러다임이다. 원불교 교정원의 통일부원장 신설은 어떻게 봐야 할까. 통일부원장의 역할에는 공감하지만, 명칭은 동의하기 어렵다. 

통일 이전에 한반도 평화 체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라는 세계주의적,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바라봐야 한다. 

교단의 어른들이 말했던 ‘평화통일’의 본질적 가치를 봐야 한다. 스승님들의 뜻이 북한식 적화통일, 예멘식 흡수통일은 아닐 것이다. 원불교는 민족종교가 아닌 세계종교다. 평화가 통일보다 먼저다.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2021년 12월 0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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