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 스님
명진 스님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히다 보니 별명도 많이 생겼다’는 명진 스님. 그래서일까, 운동권 스님, 좌파, 독설왕, 청개구리 스님, 그리고 승적을 박탈당하고는 ‘프리랜서’로 불리기도 하는 스님을 만나기 위해 나서는 길. 쌀쌀한 바람 끝에 시린 손끝을 맞잡는다. 차가움을 감싸는 맞잡음.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시린 손끝 맞잡아주는 서로의 손길, 서로의 아픔 감싸는 맞잡음이 아닐까. 생각 하나 붙들고 은덕문화원에 도착했다. 깊고 고요한 눈매, 수줍은 웃음, 그 많은 별명이 무색할 만큼 그저 선한 얼굴로 들어서는 명진 스님. 그는 어린 시절, 출가를 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인터뷰, 아니 그의 이야기가 그렇게 시작됐다.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이렇게 힘든 삶을 왜 살아야 하는 걸까.’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의 방황은 그만큼 깊었다. 무주 관음사에서 지내던 열아홉 살 때, 그는 만행 중이던 한 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네가 누구냐”고 묻는 스님과의 대화는 결국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것, 어렸을 때 고생한 것, 하나뿐인 동생을 잃은 것, 그 깊은 고통이 모두 이 소중한 물음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을까. 어머니의 죽음은 그를 출가로 이끌었고, 동생의 죽음은 그가 수행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우리는 어떤 날에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많은 일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힘들더라도 실패하고 좌절하는 과정에서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말한다. ‘사는 건 자기 앞에 오는 여러 삶의 형태들 속에서 배우고 깨닫는 일의 연속’이라고. 비오는 날도 있고, 폭풍우 치는 날도 있다고. ‘최상의 행복이란 삶에서 다양한 흥망성쇠를 마주함에도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이라고. 그는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전한다. 알 수 없는 인생길, 그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이유도 다름이 없다. 

 

진실은 금방 드러납니다
요령으로 살지 말고 진심으로 살아야 하는 까닭입니다
진실한 마음은 특별한 게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게 바로 진실한 마음입니다
또한 정직하게 그대로를 감당하겠다는 용기입니다

잘 사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
“왜 사는가” 막막한 질문이다. 그는 이 막막함이 ‘왜’라는 질문의 매력이자 힘이라고 말한다. 잘 사는 법은 잘 묻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왜 살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이 보이지 않아도 끝없이 묻고 또 물어봐야 합니다.” “자기 길을 가는 첫발이 ‘왜’라고 묻는 것이고, 그렇게 묻고 또 물어보며 삶을 성찰하는 과정이 곧 수행이고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방법 아닐까요?” 그래서 수행은 어쩌면 ‘산중의 스님’보다 번잡한 일상과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번민하고 부딪히는 현대인에게 더 필요한 것임을 그를 통해 알게된다. 

평등 추구하지 않는다면 거짓 평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수행도 필요하지만 최소한의 물질도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강연을 가거나 법회를 할 때, 국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살 수 있을 의식주교(醫食住敎)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는 옷이 아니라 의료(醫療)입니다. 아프면 누구나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권리와 최소한 먹고 자고 일정한 범위의 보통교육을 국가가 책임질 때 국민이 비로소 여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십오만 킬로와트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위에서, 칼바람 이는 고공 크레인 위에서 목숨을 걸었던 노동자들을 늘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힘을 보태주었던 그. 오리털 잠바, 장갑, 양말 등을 올려보내고, 잠을 안 자고 올리는 21일 기도를 드리며 그는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했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노동자와 농민이 최소한 인간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는 잘못됐다”고 그는 직언한다. ‘평화를 바라면서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거짓 평화’라는 말도 숨기지 않는다. 물질적인 어려움을 최소한 책임지는 국가. 그는 우리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종교가 고통과 함께한다는 건
누군가의 표현대로 ‘열악해도 심각해도 절망 속의 침울함 속에서도 사람들을 웃게 하는 스님’인 그. 하지만 그는 MB정부 당시 날 선 정부 비판을 하면서 주요사찰 대상이었고, 결국 봉은사 주지에서 쫓겨나고 승적까지 박탈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세상과 함께 아파하는 것은 수행자라면 마땅히 가야 할 길입니다” 출가의 이유는 ‘호의호식’도 ‘자신만의 안락’도 아니라는 그의 거침없는 말이 이어진다. “종교인이 누리는 모든 것은 세상으로부터 옵니다. 종교가 고통과 함께 한다는 건 그 고통의 근원에 대해 주목하고 발언하며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는 2017년 여름 조계종 적폐 청산을 위해서도 20일 가까이 단식을 했다. 일흔 살을 앞두고 그가 적을 두고 있는 조계종 개혁을 위해 단식을 감행했던 절실함은 무엇이었을까. “잘못된 일에 대해 침묵으로 동조하지 않고 발언하며 항거하는 것도 종교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리고 못다한 이야기
“거짓으로 꾸며서는 잘 살 수 없습니다. 진실은 금방 드러납니다. 요령으로 살지 말고 진심으로 살아야 하는 까닭입니다. 진실한 마음은 특별한 게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게 바로 진실한 마음입니다. 또한 정직하게 그대로를 감당하겠다는 용기입니다.” 
원불교에 대한 그의 시선은 어떨까. “세상의 아픔에 함께 하는 원불교의 좋은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원불교 개혁의 움직임을 바라본 그의 시선 또한 궁금하다.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실수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 또한 용기이고 변화의 시작입니다.” 

[2021년 12월 0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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