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정산종사법어』 응기편 44장에서는 “재가와 출가가 마음에 있고 몸에 있지 아니하며, 보살과 중생이 마음에 있고 몸에 있지 아니하나니, 생각 생각 보리심으로 걸음걸음 삼계를 뛰어 나라”라고 했다.

원불교 교도는 재가교도와 출가교도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어느 정도 공부와 사업의 성과가 있어 이름이 법보(法寶)에 오른 출가교도는 전무출신, 재가교도는 거진출진이라고 부른다. 원래 전무출신과 거진출진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새 정법회상에 공헌하는 방식이 다를 뿐 근본적으로 차별이 없다. 하지만 현재 원불교에서 전무출신 제도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데 반해 거진출진은 제도적으로 전혀 정착되지 못했고 교단 내 위상도 전무출신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거진출진이라는 단어를 육일대재나 명절대재 묘위보고를 할 때 이외에는 거의 들을 수 없다는 것이 그 반증(反證)이다.

현재 원불교에서 ‘교화’는 전무출신 중에서도 오직 교화직 교무의 전유물이다. 이런 말을 하면 종종 재가교도도 자유롭게 교화할 수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재가교도는 전무출신의 지휘와 통제 하에서 교화할 수 있을 따름이다. 원불교에서 교화를 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기간제 전무출신으로 ‘출가’를 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교화가 전무출신의 전유물이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것은 교단 제3대를 기점으로 ‘교화전문화’를 위해 재가교무와 재가교령 등을 없애고 ‘교화권’을 전무출신에게만 부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불과 30여 년 전의 일인 것이다. 이렇게 교단에서는 ‘교화활성화’를 위해 중대한 선택을 했지만, 현실은 교화권을 잃은 재가교도들이 교화의 주체에서 교화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전무출신에 종속되는 속도가 빨라졌고, 대부분의 교당 교화도 재가교도를 위한 법회와 설교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원불교 교화가 교당 밖이 아닌 교당 안으로 향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교단의 전무출신에 대한 의존이 심화될수록 재가교도의 역할과 역량은 더 퇴보하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다.

필자는 원불교 교화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재가교도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재가교도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교화할 수 있는 ‘교화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아가 전무출신과 더불어 거진출진이 제도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교단의 모든 분야에서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때, 더 밝은 원불교의 미래가 펼쳐지지 않을까. 재가와 출가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영산선학대학교

[2021년 12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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