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일연 교도
채일연 교도

[원불교신문=채일연 교도] 여전히 뜨겁다. 개 식용과 관련된 논쟁은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고,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지만 해결은 가시밭길이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나 정치권 역시 눈치를 보며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로 논란의 전면에 나서지 않으려 한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27일 “이제는 개 식용 금지에 대해 신중히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냐”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고, 이를 논의하고 추진하기 위한 ‘개 식용의 공식적 종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12월 9일 출범시켰다.

대통령의 발언과 정부의 움직임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오자 역시나 기사 댓글에는 찬성과 반대가 뒤엉켰다. 그중 개 식용 금지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된 주장은 다음과 같다.

먼저 소, 돼지, 닭은 먹어도 되고, 왜 개는 안 되냐는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해 『동물권 논쟁』의 저자 임종식 교수는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라며 비판했다. 개 식용 금지론자들이 다른 동물을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이들의 주장을 다른 내용으로 대체하고 그 내용에 대해 반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금지 반대론자들은 비인도적인 사육 및 도축과정에 대해서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개에게도 이로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행축산에서의 동물들의 사육환경 역시 비인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더욱이 개의 경우 탈출, 물림사고 등의 우려가 있어 사육환경 자체가 다른 농장동물들에 비해 열악할 수밖에 없다. 피치 못하게 동물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을 덜어주고, 동물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은 이미 전세계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다. 하지만 개 식용을 법제화하자는 것은 고통받는 동물의 종을 늘리는 것으로 우리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 윤리기준에도 반한다.

개 식용 금지에 반대하는 이들의 또 다른 논거는 ‘개인의 선택권’이다. 개 식용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므로 법적 금지는 적절치 못하다는 주장이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선택권은 최대한 존중되고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공동체를 구성해 살아가는 데 있어 개인의 모든 자유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제한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개 식용으로 인해 동물보호 법제가 제자리를 잡지 못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 법은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를 금지할 뿐 동물을 죽이는 것 자체는 금지하지 않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건강상 특별한 이상이 없는 자신의 반려동물을 안락사시킨다 하더라도 처벌이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법에 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원칙적으로 동물을 죽이지 못하게 하면 해결할 수 있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개 식용 문제로 인하여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꺼리고 있다. 따라서 개 식용 금지는 일부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보다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된다는 점에서 기대되는 공익이 더 크다 할 것이다.

이렇듯 개 식용은 이제 우리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악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때문에 대통령이 개 식용 금지를 언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닌 실천이다. 관계부처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이 허언이 되지 않도록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남이 없이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불광교당

[2021년 12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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