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완 교무
정세완 교무

모든 생각과 행동은 업식으로 저장 
우리는 하루하루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한 송이 꽃을 보면서도 ‘이쁘다’, ‘사랑스럽다’하는 마음을 내고 나와 가치가 다른 사람을 보면 미워하는 마음도 일어납니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생각들이 업식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업보가 되고 업장이 되기도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인과품 3장에서 동물은 뿌리를 하늘에 박고 살므로 마음 한번 가지고 몸 한 번 행동하고 말 한 번 한 것이라도 그 업인(業因)이 허공 법계에 심어져서 제각기 선악의 연을 따라 지은 대로 과보가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업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바이며 지은 업식에 따라 업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업은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본 세상이며, 의지 작용의 결과물입니다. 

양의 식물 사과, 음의 식물 연근
사과는 햇빛을 많이 받아야 아삭아삭한 맛을 냅니다. 장수 사과는 해발 450미터에서 서리가 내릴 때까지 바닥에 은박지를 깔고 햇볕을 쬐어줍니다. 해발 500미터인 운봉에서는 서리를 세 번 정도 맞혀 출하하는데 이를 얼음사과라고 합니다. 

연근은 물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봄에 파종하고 가을에 수확합니다. 연근은 물만 잘 보충해주고 땅만 살아 있으면 농약을 칠 일이 없습니다. 연근도 아삭아삭하고 좋은 맛을 냅니다. 사과와 연근 모두 업의 작용에 따라서 음양의 식물로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나의 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업장이 두껍게 되는 원인 
사과의 입장에서 보면 햇빛이 제일 좋은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연근의 입장은 물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집착이 생기면 싫어하고 좋아함에 끌리게 됩니다. 마음 한번 가지고 몸 한 번 행동하고 말 한 번 한 것이 다 팔식에 저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허공법계에 저장된다고 하셨죠. 그런데 업장이 두터워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집착입니다.

사과의 입장에서는 햇빛만 좋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과는 평생 햇빛의 습이 들었습니다. 이 습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편착되고 왜곡되어서 종자 창고에 저장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고 업의 창고에 새끼줄을 뱀으로 저장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업장을 두껍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둘째는 주변의 인연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에 의지하고 사과는 햇빛에 의지하고 연근은 물에 의지합니다. 인연이라는 것도 여환가유(如幻假有)입니다. 허깨비같이 가짜로 임시로 있다는 것입니다. 손님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인연을 전부라고 생각하고 우주 전체를 보지 못하고 본질을 보지 못합니다. 사물의 실상을 보지 못합니다. 어두운 거리의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고 가까이 가보니 새끼줄이구나 하고 알지만 실상 이 새끼줄도 본질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본질은 지푸라기와 마(麻)입니다. 이와같이 집착과 인연에 매이는 모든 업식이 업의 장애 요인으로 저장이 되는 것입니다.
 

생로병사가 없는
절대의 자리에서
육근을 작용

업을 초월하는 방법1
업을 초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나의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중생과 범부가 사는 세상을 세간이라고 합니다. 세간 생활은 받는 것을 먼저하고 받은 만큼 되돌려 주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생활을 하는 곳이 세간입니다. 보살과 부처가 사는 세상을 기세간(器世間)이라고 합니다. 기세간에서는 남에게 주는 것을 먼저 합니다. 남에게 주는 것을 기쁨으로 압니다. 육바라밀을 실천합니다. 이타자리(利他自利)가 우선되는 세상이 기세간입니다. 중생과 범부들은 받고 주려고 하나 천상 세계에 사는 보살과 부처는 베품에 따라 공덕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중생과 보살은 출발점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나의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악업을 소금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릇에 가득 찬 소금을 먹으려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릇이 크면 소금을 담고 물을 붓습니다. 그릇이 크면 클수록 소금의 양은 줄어듭니다. 여기에 야채도 넣고 채소도 넣고 끓이면 맛있는 요리가 됩니다. 그릇의 크기는 지혜로써 키우고 야채와 채소는 복으로써 장만합니다. 업식은 각자의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파란 안경을 쓰면 세상은 파랗게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면 세상은 빨갛게 보입니다. 그런데 평생 파란 안경만 쓰고 빨간 안경을 써보지 않은 사람은 빨간 세상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서로 다른 업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과가 연근의 특성을 이해하듯 사람들은 각자의 서로 다른 업식을 인정해야 합니다. 업식을 잘 이해하면 소통과 사랑을 잘할 수 있습니다.

업을 초월하는 방법2
둘째, 우리의 성품자리를 찾는 길입니다.
시간의 제한도 받지 않고 공간의 제한도 받지 않고 우주에 가득 차고 영원하고 일체공덕과 모든 재주를 다 갖춘 자리를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들어 안주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을 두고 ‘업보(業報)는 있는데 작자(作者)는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 자리에 합일하면 나도 사라지고 업보도 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성품자리를 보고 합일하는 것이 중요하냐 하면 업식과 업보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가에서는 이것을 사승마(蛇繩麻)라고 합니다. 뱀 사(蛇), 새끼나 노끈인 줄 승(繩), 삼 마(麻)입니다.어두운 밤길에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는 것을 뱀 사(蛇)라고 하고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끼줄로 확인하는 것을 줄 승(縄)이라고 합니다. 새끼줄을 자세히 뜯어보니 결국 짚이나 삼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착하면 새끼줄을 뱀으로 업식에 저장하게 됩니다. 또한 자세히 보고 새끼줄로 저장했지만 이 또한 망상이라는 것입니다. 본질은 짚이나 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집착과 망상이 아닌 실상을 업식에 저장해야 업보에 있어서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실상이 많이 저장될수록 선업은 많이 쌓이게 되고 악업은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과 지혜를 닦아야 합니다.

벽격풍동 심격마침(碧擊風動 心擊魔侵)
‘벽이 갈라지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이 갈라지면 마군이가 침노한다’라는 말입니다. 마음이 갈라지는 이유는 헛됨과 집착과 욕심 때문에 갈라집니다. 허상으로 인한 마(魔)의 빈틈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과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업이 상대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수행자들은 업력으로 살지 말고 원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맹구우목 침개투침한 것이 바로 우리 공부인들의 인생입니다. 허망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업장 소멸을 해야 합니다.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신 선과 악을 초월한 지선의 자리와 고와 낙을 초월한 극락의 자리에서 마음 한번 가지고 몸 한 번 행동하고 말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허공 법계에 업인(業因)이 심어지니 어찌 사람을 속이고 하늘을 속일 것이랴!’고 대종사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업장 소멸의 가장 좋은 방법은 무명을 걷어내는 것입니다. 무명의 원인은 생로병사라고 부처님께서는 12인연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생로병사가 없는 절대의 자리에서 육근을 작용하는 것입니다. 보조국사는 『수심결』 마지막 장(40장)에서 보배를 얻으려면 가죽 주머니를 놓으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집착은 업장의 가장 큰 장애요인입니다. 다함께 진여의 세계에 안주한 육근의 작용으로 업보의 자유로움을 얻는 공부인 되시기를 심축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1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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