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산국악원 젊은 소리꾼 신진원
국립부산국악원 젊은 소리꾼 신진원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판소리라면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영상으로 수궁가를 재해석한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와 딸을 좋은 소리꾼으로 만들기 위해 눈을 멀게 한 아버지가 나오는 영화 ‘서편제’ 정도로만 알고있는 편협한 시각의 기자가 젊은 소리꾼 신진원(34·은덕문화원교당)교도를 만나기 위해 국립부산국악원으로 갔다. 

국립국악고 출신인 신진원 교도는 중앙대 국악대학 음악극과, 전북대 대학원 한국음악과를 졸업했다. 고등학생 때 제23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 전국대회 판소리 장원을 차지하고 2009년 국립극장 차세대 명창, 2010년 대한민국 인재상 대통령상도 수상했다. 특히 중앙대학교 전체 수석으로 입학하고 4년 장학생으로 공부를 마칠 만큼 유능한 인재인 그는 국립민속국악원 연수단원, 준단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립부산국악원 정단원으로 8년째 활동하고 있다. 
 

국립극장 차세대 명창·대한민국 인재상 대통령상
기교를 좇지 않고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어

올해 세 번의 완창 무대 올려
영화 ‘서편제’에서 ‘한’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딸을 눈멀게 하는 아버지의 인도로 소리꾼이 돼가는 여자 주인공처럼 그가 판소리를 하게 된 데는 범상치 않은 사연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대답이 의외다. 

“아홉 살 때 기관지가 좋지 않아 기침을 자주 했는데 주변에서 소리를 하면 목이 트인다고 해 부모님이 전북 도립국악원 야간반 수업에 보내셨어요. 다니다 보니 잘한다는 소리도 듣고 상도 타고 하면서 재미있더라구요.”

그렇게 소리의 길로 들어선 그는 이제 직장이 국악원이고 하는 업무가 공연이고 연습이다. 판소리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부르는 ‘완창’ 공연이 소리꾼의 능력을 입증함과 동시에 판소리의 진정한 매력을 보여주는 공연이지만 짧게는 3시간에서 춘향가의 경우에는 8시간 동안 공연을 해야 하니 아무나 도전하기는 어렵다. 그 어렵다는 완창을 그는 올해 7월 국립민속국악원 소리판, 8월 국립부산국악원 소리광대, 가장 최근에는 11월 30일 ‘신진원의 완창 판소리 미산제 수궁가’로 이미 세 번이나 무대에 올렸다. 

어릴 때 멋모르고 들어선 소리의 길이 어느새 25년의 세월이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소리를 따라 하다 점점 많은 스승을 알고 만나게 되면서 다양한 소리로 영역을 넓혀가며 한 소리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그다. 

“요즘은 고 안향연 선생님이 가장 닮고 싶은 분입니다. 좀 날카롭고 단단하달까. 그런 면이 제가 없는 부분이라 키우고 싶거든요. 예술에 정답은 없지만 부드럽고 따뜻하다는 평을 받는 제 장점에 부족한 단점을 보완하면 더 풍성해질 테니까요.”
묵직하고 깊이가 있는 안향연 명창의 소리를 들으면 소름이 돋는다는 그는 한이 서린 대목을 표현해야 하는 작품을 할 때 특히 필요한 부분이라 노력해보고 싶다고. 
 

전주세계소리축제 공연에서 심청가 중 한 대목을 부르는 장면.
전주세계소리축제 공연에서 심청가 중 한 대목을 부르는 장면.

신진원의 소리를 찾고 싶어
그러나 소리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려워 고민이 깊다. 유명한 명창들 누구 누구가 아닌 자신만의 소리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렸을 때가 좋았다. 늘 정해진 길로 똑같이 흉내 내면 그걸로 상도 타고 이름도 날렸다. 대회만 나가면 상을 타오니 자신이 제일 잘하는 줄 알았고 그러면 다 되는 줄 알았다. 편하게 소리하던 때다.

“대학 졸업 즈음부터 제 소리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주위에서 잘한다, 잘하다 하니 제 안에 갇혀 살았음을 알겠더라구요. 어렸을 때는 그래도 됐지만 성인이 되고 보니 저의 한계가 딱 보였습니다. 이제야 다른 사람 소리도 들어오고 나만의 소리에 대한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어느 누구의 소리도 아닌 ‘신진원의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아직은 답이 안 보인다. 평평하게 너른 들에는 골짜기가 없듯이 골이 깊어야 산이 높은 이치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의 고민이 반가운 이유다. 지금의 고민이 깊을수록 그의 소리가 더 단단해져 갈 것이므로 젊은 소리꾼인 ‘신진원’에게 쏠려있는 눈들이 따뜻하다. 

“물론 ‘이 정도로도 괜찮아’라며 적절히 다독거리며 남들이 눈치 못 채게 제가 잘하는 대목만 골라가며 공연할 수도 있어요. 근데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제가 부족한 부분을 숨기고 포장할 것이 아니라 부딪치고 공유하며 드러내야 공부가 되는 것 같아요.”

나의 결핍을 숨기지 않겠다고 마음을 내려놓으니 주변이 눈에 들어오면서 오히려 그를 기본으로 돌려놨다. 어린 아이들의 소리도 유심히 바라보면서 어디서 저 소리가 나오는지 들여다보게 됐다. 전에는 어떻게든 어려운 기교를 좇느라 급급했다면 지금은 하나를 내더라도 흔들리지 않게 내기 위해 기본으로 돌아가고 있다. 

어렵게 공부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예술에 비해 턱없이 낮은 대우를 받는 국악계의 현실에 좌절해 한 때 슬럼프도 겪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예술을 선택한 내 결정이 잘못됐나 싶기도 하고 뒷바라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고 있는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면 마음이 더 무거워지기도 한다. 

이모이자 멘토, 김현오 교무님
이런저런 고민이 깊어질 때 그에게 큰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 소리의 고장인 전주가 고향인 그는 감곡 원광어린이집 출신으로 보스턴교당 김현오 교무가 이모다. 늘 공연을 하는 사람이라 마음이 흔들리면 소리에 바로 영향이 미치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그는 김현오 교무에게 상담 전화를 한다. 마음은 그대로 밖으로 다 드러나게 돼 있다는 교무님의 가르침대로 늘 마음으로 돌아오는 훈련을 한다고. 

최근에 ‘미산제 수궁가’ 완창 공연 소감이 듣고 싶다는 질문에 그는 만족스러운 무대는 하나도 없다며 특히 공연을 마치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허허롭다는 답이 돌아왔다. 왜? 그리고 그 허허로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가 그토록 찾고 싶어하는 자신만의 소리에 맥이 닿아있지 않을까. 

그런 허허로움을 안고 그가 다시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는 좀 더 관객과 소통해보고 싶어 완창을 꾸준히 올릴 거에요. 4시간짜리 흥보가 완창을 서울 무대에 올려볼 계획이고 소리극도 만들고 싶어요.”

[2022년 1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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