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새해를 시작하는 1월,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신년사를 학습하는 일이다. 남쪽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해 주요 기관장, 각 기업의 대표 등이 개별적으로 신년사를 발표하지만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만이 공식적으로 신년사를 발표한다. 북한의 신년사는 노동당과 국가수반이 새해를 맞이해 행하는 공식적인 연설이나 연설문을 말하며, 여기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간단한 인사말이 아니라 전년도의 사업을 분야별로 평가하고, 한 해 추진해야할 정책방향과 과제들이 담긴다. 
 

 각 기관, 기업, 조직별로 진행되는 신년사 학습 모습(위)과 각 도·시·군·기업별로 진행되는 궐기모임 모습(아래).
 각 기관, 기업, 조직별로 진행되는 신년사 학습 모습(위)과 각 도·시·군·기업별로 진행되는 궐기모임 모습(아래).

신년사가 북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신년사의 형식은 시기별로 달랐다. 북한의 첫 최고지도자였던 김일성 주석은 해방 다음해인 1946년부터 1994년까지 두 번을 제외하고 매년 1월 1일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1994년 김 주석이 사망한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직접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고,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기관지 <조선인민군>, 청년동맹 기관지 <청년전위> 등 3개 주요 신문사의 공동논설로 신년사를 갈음했다. 2012년 집권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다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다만 2020년에는 처음으로 연말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전체회의) 결정서로 신년사를 대체했다. 2021년에는 짤막하게 친필 연하장을 발표하고, 신년사에 담아야할 주요 정책방향은 1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8차대회 결정서로 대신했다. 

올해는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연말에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보고와 결론’을 신년사로 대체했다. 내부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국경봉쇄, 국제사회의 제재, 원자재 부족 등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고, 외부적으로 미·중간 대결 심화와 남한의 대선 등 정세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육성 신년사 대신 당 전원회의 결정서로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신년사는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주목을 받아왔다. 대내 정책과 과제 외에 대외·대남정책 방향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쪽을 비롯해 미국, 중국 등 해외에서도 신년사의 내용에 촉각을 세우고, 이를 분석해 북한의 한 해 정책방향과 동향을 예측해왔다. 

특히 다른 나라와 달리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는 북한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1년 동안 학교와 직장에서 생활지침과 평가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일주일, 한 달 단위로 각 조직별로 의무적으로 ‘생활총화(결산)’ 모임을 갖는다. 신년사의 내용은 이 모임에서 주일별로, 월별로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또한 신년사는 당과 국가기관, 각 기업별로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과제 수행 정도를 평가하는 척도로 활용된다. 따라서 북한의 대다수 주민들은 그해의 신년사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신년사를 외우고 있지 못하면 생활총화 모임에서 발언하기 어렵고, 각 기관별·기업별 평가모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기가 불가능하다. 모든 모임에서 “올해 신년사에서는 어떤 과제가 제시됐다”는 발언을 서두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5일 평양시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 결정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평양시 궐기대회’를 마치고 청년학생들이 각종 구호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지난 1월 5일 평양시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 결정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평양시 궐기대회’를 마치고 청년학생들이 각종 구호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한 달 내내 학습, 토론, 궐기대회 
그래서 매년 신년사가 발표되면 북한에서는 신년사 ‘학습 열풍’이 분다.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매년 ‘신년사 학습으로 전당이 끓는다’는 제목으로 “당, 근로단체 조직들은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신년사의 사상과 정신을 깊이 체득하는데 올해 전투에서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기본담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신년사 학습을 실속 있게 조직진행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싣는다. 
신년사 학습은 각 개인뿐 아니라 직장 단위로 조직적으로 진행된다. 각 조직별로 문답식 학습경연과 토론이 이어지고, 하루 일과를 끝마친 저녁에는 한자리에 모여 토론과 논쟁의 방법으로 신년사 내용을 되새긴다. 학교에서는 신년사의 내용을 묻는 시험문제를 출제한다. 

북한 전역에는 신년사에서 제시된 내용을 축약한 구호판이 세워진다. 신년사를 “자자구구 심장에 쪼아 박도록 하고 있다”는 북한의 선전이 실감날 정도로 ‘열공’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한 달 정도 거치면 웬만한 북한 주민은 신년사의 기본내용을 거의 파악하게 마련이다.

과거에는 신년사를 발표하면 통째로 암기하도록 했다. 각 조직별로 상품을 내걸고 ‘암기 경연’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신년사 학습을 ‘암기식, 주입식, 독경식’이 아니라 실효성 있게 할 것을 강조한다. 단순히 암기할 것이 아니라 신년사의 핵심 내용과 각 분야에서 제시된 정책적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각 기관과 조직에서 담당해야 할 과제와 연결시켜 토론식으로 학습하라는 것이다. 

올해는 신년사가 아니라 지난 연말에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보고와 결론’이 학습대상이다. 올해의 핵심구호는 “자력갱생의 기치높이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이다. 특히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농촌 현대화와 투자 확대가 어느 해보다 강조됐다. 2020년까지 식량자급을 이룬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북한은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한 10개년 목표를 제시했다.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향후 10년간 달성할 식량 생산목표, 축산물·과일·남새(채소)·공예작물·잠업 분야의 생산목표가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신년사 학습과 동시에 모든 행정기관, 기업소, 협동농장에서는 세부이행 계획을 수립하고 각종 실무학습, 지지 궐기대회, 해설 모임 등을 이어간다. 올해는 1월 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내각 총리 등 고위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 결정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평양시 궐기대회’를 시작으로 각 도와 시·군에서 궐기대회와 행진이 진행됐다. 

그리고 북한은 ‘국방력발전 5개년 계획’에 따라 준비된 극초음속미사일을 두 차례 발사한 후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당 전원회의가 끝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국방력분야의 성과를 대내외적으로 시위한 것이다. 북한은 ①극초음속미사일 ②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 제고 ③다탄두개별유도기술 제고 ④핵잠수함 및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개발 ⑤군 정찰위성 개발 등을 ‘국방력발전 핵심5대과업’으로 지정해 추진하고 있다. 

북한은 올해 상반기까지는 미사일 발사 등 국방력 분야를 중심으로 성과를 과시하고, 하반기에는 평양과 농촌의 건설분야 성과를 주로 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22년 1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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