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단에는 ‘혁신’이 화두가 되었다.

원불교 역사를 살펴보면 소태산의 『조선불교혁신론』(1935년) 발표 이후 9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에도 여러 혁신 의지가 표출되었지만, 이번만큼 절실한 적은 없었다. 밀레니엄이라 일컬어지며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2000여 년 이후에도 교단은 여러 차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수위단 제도 개선, 청소년 교화 전력, 교헌개정 등에 매진했지만 결과는 늘 유야무야로 끝난 정황이 있다. 이는 오히려, 잠시의 꿈틀거림이 자칫 분열만 초래하고 제대로 된 결과를 보지 못함으로 인해 불신의 상처만 키웠다, 

우린 다시, ‘교단혁신특별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있다. 그러기에 이제, 원불교의 혁신은 더 이상 혁신 구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즉, (가짜) 혁신을 (진짜) 혁신하는 특단의 의지가 결집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로 인한 단절이 원불교 위기를 넘어서, 종교 공멸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더 이상 과거처럼 어물쩍거리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진정, 교단혁신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먼저 ‘자기 혁신’부터 차곡차곡 이뤄가야 할 것이다. 교단은 여러 조직과 단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톱니바퀴처럼 얽혀 돌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자기 일터에서 자기 스스로 혁신의지를 불사르지 않으면 그 어떤 혁신도 허사가 될 뿐이다. 나만 빼고 모두를 혁신하라는 허무맹랑한 혁신의지가 낮도깨비처럼 떠돌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반드시 자기희생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교단의 상하좌우 모든 구성원들이 자기 뼈를 깎는 심정으로 기꺼이 불이익을 감수할 때 혁신의 동력은 힘을 받을 것이다. 

또, 우리 모두의 혁신에는 공감과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특위가 구성되어 활동한 사례를 보면 대중의 뜻을 빙자한 일방소통이 큰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자기의 주의주장을 대중의 뜻으로 포장해 밀어붙임으로써 합력을 끌어내지 못한 경우도 빈번했다. 이제, 혁신을 끌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매개체가 되어 대중들의 의지를 소통시키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또 혁신에 있어서도 자기 뜻과 맞지 않다하여 무관심과 비협조로 일을 망친 사례로 심심치 않았다. 이 역시 깊이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혁신의 바탕에는 진실이 바탕되어야 함이 필수다. 혹, 지금의 혁신의지가 누구의 이용물이 된다거나, 여기에 의지해 자기 뜻을 좇는다면 일찌감치 냉수 마시고 속부터 차릴 일이다. 지금 교단의 혁신은 원불교 모두에게 사생결단의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말로만 되뇌이는 메아리 없는 혁신, 여론에 떠밀린 형식적인 혁신, 그런 혁신을 혁신해야 할 때다.

[2022년 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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