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그는 자신을 “나는 종교에 심취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말이 그럴 뿐,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삶의 면면이 원불교로 푹 젖어 있음을 알게 된다. 

중앙교구 원무, 영등교당 교도회장, 익산성지해설사, 중앙교구 청운회장 역임 등 교단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오고 있는 백제명 교도(영등교당 교도회장). 그에게 가장 기쁜 순간은 ‘원불교 참 괜찮은 종교더라’, ‘원불교를 다니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더라’ 등 원불교에 대한 인식과 호감도가 높은 이야기를 들을 때이다. 그럴 때마다 ‘원불교를 신화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닌, 내 생활의 단면으로 보여줘야겠다’고 더욱 다짐하는 그다.

눌은밥 한 줌
본래 일원가정이 아니었던 그의 가족은, 그의 동생(백광문 교무)이 원불교학과에 진학하면서 원불교로 입문했다. 먼저는 부모님이 교당에 나갔고, 이후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는 그. 물론 단번에 시작된 건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교당에 같이 다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때 축구회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늘 우리 팀 경기가 일요일 오전에 있어서 ‘요일이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니 정말 요일이 바뀌더라고요.” 1990년, 그가 본격적으로 교당을 나가기 시작한 해다. 
여기에 더해, 그에게 남아있는 어릴 적 기억 하나. 초등학생이던 그는 친구들과 함께 종종 익산교당에 구경을 왔다. 교당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르면서 까치발을 하고 창틀에 매달려 법회 풍경을 구경하곤 했던 것.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저쪽에서 남자 어른 한 분과 여자 어른 두 분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저희를 부르면서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안 먹는다고 하니까 여자 어른 한 분이 ‘이거라도 먹고 가라’면서 양푼에 담겨있던 눌은밥 한 덩어리를 조각조각 나눠서 손에 쥐어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교무님이었던 거죠.” 그때 그 작은 따뜻함은 오늘날까지 마음에 닿아있다.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그는 만나고 겪는 여러 사례를 통해 ‘돈이 행복을 주지 않는다’를 여러 번 확인한다. 형제자매간에 상속으로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는 부지기수이고, 부부 사이임에도 재산을 숨기려고 애쓰거나 부모가 특정 자식에게만 마음이 기우는 사례도 자주 접하는 것. 

그 역시 돈으로 인해 인생의 큰 경계를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는 것에 더해, 보증 선 일들이 제때 해결되지 못하는 일이 여러 건 겹친 것이다. 자신과 가까운 인연들에 의해 벌어진 일들이기에 힘듦은 몇 배였을 터. 하지만 그는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 개인 기도에 ‘용서하게 해주세요’라는 한 줄을 잊지 않고 넣을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대방을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을 수 있으니까.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던 그 시기를 그는 ‘진리가 나를 이 세상에 그냥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선을 한번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극복해냈다. 여러 교무들에게 들은 가르침을 새긴 것이다. 생활종교로서의 원불교 가르침이 그의 생활에 잘 맞아든 일면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돕는 것도 
습관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 
작은 데서부터 시작해야

기쁜 일 투성
교전 사경 몇 회, 『원불교전서』 봉독 몇 회 등의 기록은 따로 없다고 말하는 그. 하지만 교화에 대한 열정이나 교무에 대한 존경은 누구 못지않다. 특히 그는 출가교역자들의 생활 안정과 교화 활동 지원에 재가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자주 강조한다. “교무님들은 기본적으로 종교나 신앙에 대한 DNA가 있을 텐데, 여러 종교 가운데 원불교로 왔어요. 기독교나 불교로 가면 돈도 더 있고, 대우도 더 받고, 권력이나 명예도 더 있을 텐데, 초창기라 아직 많이 힘든 원불교를 선택한 거죠. 그러니 그 삶을 우리가 함께 책임져야죠.”

한편 그는 10년 넘게 익산성지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여러 활동 가운데 “마지막 봉사를 한다면 해설사”라고 단언할 정도로, 그는 해설사 봉사에서 원불교 교도로서의 자부심과 희열을 크게 느낀다. 해설을 통해 비교도들에게는 원불교를 알릴 수 있고, 교도들에게는 더 깊은 원불교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교도든 비교도든 순례 코스가 진행될수록 순례자들의 표정과 마음가짐이 변화되는 것을 그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러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로서 함께 기쁠 수밖에.
또 그는 『정전』 솔성요론 1조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을 것이요’라는 가르침을 가장 좋아한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자기를 믿으라고 하지 않았고, 법을 믿으라고 했어요. 나를 얼마나 내려놓아야 이런 말이 가능할까, 나라면 가능할까를 종종 생각해봐요. 그래서 좋아요. 나를 낮출 수 있게 하니까요.”
 

생활에서 보여주는 공부
그는 인터뷰 내내 “좋은 가르침이 실제에 쓰이지 못 하면 안된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개인적으로는 혹 진리에 못 미치는 역량이더라도, 실제에서 실현해내려는 노력이 각자 각자에게 모두 필요하다는 것. 그래야 진리와 실제가 하나 되는 삶이지 않겠냐며, ‘나눔도 습관’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그래요. 형편이 나아지고 돈을 많이 벌어서 도울 거라고요. 하지만 누군가를 돕는 것도 습관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서, 작은 데서부터 시작해봐야 큰 도움도 줄 수 있어요.”

금전적으로 힘든 시기, 누군가를 돕는 데 정성을 보태는 것이 죄책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라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보낸 마음은 반드시 더 큰 복으로 나에게 돌아온다’고. 

“진리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내가 배운 만큼, 내가 아는 만큼 실제 생활에 옮겨서 그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본분을 다 하는 것이고, 진리와 합체되는 길 아닐까요? ‘지금의 나’로부터 변화하고 벗어나도록 하는 게 우리 공부잖아요.” 

[2022년 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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