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발전과 숭산 박길진 총장의 역할

김봉곤 연구교수
김봉곤 연구교수

[원불교신문=김봉곤 연구교수] 오늘날 원광대는 13개 단과대학에 66개의 학부, 재학생 21,569명(2000년 정보공시기준)이며, 원광대학교 부속병원 8개, 부설연구기관이 83개로, 중국·일본·미국·캐나다·독일 등 50여 개 대학과 교류하고 있는 초 매머드급 사립종합대학이다. 건학정신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개교 정신에 바탕한 ‘과학과 도학을 겸비한 전인교육’으로, 새 문명 사회건설의 주역 양성을 건학의 기본정신으로 한다. 

이러한 원광대학교의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1946년 유일학림 설치, 1951년 원광초급대학 인가, 1953년 4년제 대학으로 발전, 1971년 종합대학교로의 개편과정을 거쳐 단계적으로 성장해왔다. 이에 원광대학교 초창기부터 학교경영의 총 책임자로서 활약해 온 숭산 박길진 총장의 역할을 단계별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숭산 박길진 총장은 1946년 2월 유일학림 교감으로 취임해 1951년 원광초급대학 학장, 1953년 원광대학 학장을 거쳐 1971년 원광대학 총장으로 취임했다. 근 40여 년 동안 학교경영의 총 책임자로서 교수, 학생, 시설 등 제반 측면에서 원광대학교를 국내 굴지의 종합대학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허허벌판에서 개벽 천지를 만들어낸 원광대학교의 발전 요인으로 원불교 교단의 종교적 열망과 재정적인 뒷받침, 학교 당국의 헌신적인 노력, 지역사회의 협조 등과 함께 박길진 총장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판단하며, 개벽대학을 만들 수 있었던 숭산 박길진 총장의 저력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 요인을 분석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숭산 총장이라면 어떻게 

운영하려고 했을까

일원상을 진리와 수행의 표준 삼아
첫째, 박길진 총장은 일원상을 진리와 수행의 표준으로 삼았다. 그의 대학경영 역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일원의 진리를 자각해서 활용하는 공부를 지극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염불과 좌선에 힘써 부동하는 정심(靜心)을 길렀고, 사리연구에 힘써 만사에 시비이해를 명철히 분석했으며, 작업취사에 힘써 옳지 않은 것은 단호히 배제했다. 일원상은 원불교인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념이고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교단의 절대적인 신뢰와 협조를 가져왔다. 또한 일원상은 동정, 유무, 성속을 관통하고 포괄하는 지고의 개념이자 원리이기 때문에 대학 내의 상이한 조직 간에 분열과 대립이 아닌 화합과 일체화된 일원세계를 향하게 했고, 다양한 의견수렴을 통해서 대학교육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원동력이 되게 한 것이다.

지덕겸수, 도의실천의 교육이념
둘째, 대학교육에서 지덕겸수, 도의실천의 지속적인 실천을 주장했다. 그의 교육이념은 지덕겸수, 도의실천이라는 원광대학교의 교훈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목표는 단순히 전문분야의 지식이나 기능만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지와 덕과 의의 실천이 겸비된 전인적 교육을 지향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지는 학문의 연찬, 덕은 인간적 품성의 함양, 도의실천은 정의로운 기상의 배양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수양·연구·취사의 세 가지 병행의 공부를 통해 원만한 인격을 기른다는 원불교 교과이념과 매우 상통함이 드러난다. 지식인 이전에 인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1974년 원불교 사상연구원이 설립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념구현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열린 마음, 열린 행정, 넓은 이해심
셋째, 박길진 총장은 대학경영을 위해 열린 마음으로 폭넓게 의견을 수용했다. 전팔근 교수에 따르면 박길진 총장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다고 한다. 학교 교육행정에는 물론 교직원들의 건의나 정보를 받아들이고, 문제 있는 개인에 대한 제보가 있을 때도 직접 본인을 불러 정확한 진상을 파악했다. 박 총장은 “나는 여러분이 나에게 대학을 위한 건설적이고 유익한 건의가 있을 때는 어느 때이고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어느 누구든지 타당하고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하면 건의해주기 바란다”라고 했다. 당시 학생들이 졸업을 해도 일자리가 없어서 헤매어 도와줄 방법을 모색하던 중 취업 정보 수집 및 알선 등을 협조하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팔근이 총장에게 바로 건의를 했다. 얼마 안 돼 1986년 10월 취업보도부가 생기고 학생들을 도와주게 됐다. 박길진 총장의 열린 마음, 열린 행정, 넓은 이해심으로 원근친소에 끌림이 없이 성실하고 능력 있는 교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대학을 이룬 것이다.

우수한 교수진 확보
넷째,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박길진 총장은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국내의 저명한 교수를 많이 초빙했다. 예컨대 1973년 박길진 총장은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박사과정이 있어야 한다, 대학원 학과 신설에 관한 여건을 갖추자”라고 했다. 당시 대학원 학과 신설조건에는 두 명 이상의 박사학위를 소지한 교수가 있어야 서류를 제출할 수 있었다. 당시 원광대에는 서울대 철학과 교수였던 고형곤 박사가 와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을 더 초빙해야 했는데, 이때 고려대 문리과대 학장을 역임한 이상은 박사가 초빙됐다. 고형곤 박사와 이상은 박사가 있어서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과정 인가를 받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원광대에 초빙된 교수진으로는 고형곤, 이상은 박사 외에도 이병기, 조명기, 배종호, 전원배, 정종, 변극 등 많은 이가 있었다. 원광대는 전술했듯, 초창기 때부터 서병재, 정인승, 전원배, 김영수, 이병기 교수 등 저명한 학자들을 초빙했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인재양성에 주력
다섯째, 인재양성에 주력했다. 박길진 총장은 대학의 사명인 인재양성에 주력했다. 숭산 박길진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 4.19, 5.16 등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민주주의는 약자에서 강자되는 길을 거쳐 평화롭고 지성적으로 이뤄져야 함을 확신했다. 4·19혁명 이후 이제 독재부정을 제거해서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학생은 공부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즉 학생은 장래를 바라보고 현실을 비판하는 위치에 있어야 하므로 학원에서 수양과 연구로 자기 인격을 훨씬 키워서 대기를 만들어 장차 세계를 능히 넣을 수 있는 포부와 기운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는 겸허한 심정으로 서로 양보하고 겸손해서 남에게 호감을 주는 예의범절을 잘 지켜야 대우를 받고 항시 이기는 사람이 된다고 역설한 것이다. 박길진 총장은 학생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사에 널리 알려진 인물로 박범신 소설가, 장제우 전북대 교수, 전병철 한양대 법대 학장은 장학생으로 길러진 인물이다. 또한 우수한 인재가 많이 입학할 수 있도록 중고등학교 교장, 교감, 부장 등을 초청해 학교를 두루 홍보했다. 

원광대학의 국제화
여섯째, 대학의 국제화에 노력했다. 박길진 총장은 원광대학의 국제교류에도 힘썼다. 그가 추진했던 일원상 세계의 구현과도 일치하는 일이다. 박길진 학장은 1956년 1월 18일 미국·영국·독일 등 교육계, 종교계 방문한 것을 필두로 해외 대학 등 교육기관과 교류했다. 이에 1972년 11월 대만 문화대학과 처음으로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이후 1973년 5월 일본 경도불교대학, 1984년 12월 덴마크 오덴서대학을 비롯해 1988년 4월 캐나다 퀘벡대학교, 1989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등과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1990년대에는 1991년 7월 폴란드 아담미키비츠대학과 함께 1992년 7월 브라질 멕켄지대학, 1993년 7월 중국 로신미술대학 등과 자매결연을 체결해 학생들의 학문적 교류가 가능하게 했다.

오늘날 원광대는 학령인구 감소 때문에 학교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또한 원광대는 익산지역에 위치한 지방대로서 갈수록 학생모집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숭산 박길진 총장이라면 대학을 어떻게 운영하려고 했을까. 숭산 박길진 총장이 일원상 세계를 추구하면서 무아봉공의 자세로 약자가 강자된 길을 모색해왔던 대학경영이 다시 한번 주목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도 교단과 학교,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에서 개벽대학을 다시 만든다는 신념 아래에 혼연일체가 되어 대학의 위기상황을 극복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 숭산 박길진 총장 열반 35주년 기념 ‘숭산 박길진, 원광의 빛’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2022년 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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