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성 상담연구원
김명성 상담연구원

마음의 안정 찾은 자살계획 위기 사병
어느 날 아침 8시경 부대상담실에 출근하기 전인데 ○○함으로부터 손전화가 왔다. 자살징후를 보이는 수병(21세· 남·대학 2학년)에 대해 상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후에 간부와 동행해 상담실에 내방한 수병은 몸이 손가락처럼 가늘고 무심한 표정에 힘이라곤 거의 없어 보였다.

이른바 ‘위기상담’, 즉 생명이나 심각한 질병 등의 이야기가 상담 중에 노출되면 그런 부분은 상담비밀원칙의 예외임을 내담수병에게 알리고, 첫 회기 상담에 이어서 바로 다면인성검사를 하고, 검사결과를 덧붙여 ‘상담소견서’를 부대장에게 보고했다. 하루 계류예정으로 입항했던 ○○함이 다음 날 아침 출항하기 직전에 해당 수병에 대해서 육상부대로 파견 조치하고 상담치료를 받게 했다. 

이후 15회기의 상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수병은 엄마에 대한 애착불안, 아빠에 대한 억압된 부정적인 감정들, 매우 소극적인 인간관계 경향, ○○학과를 다니는 자신의 생각 패턴 등을 점검하고 알아차리면서 ‘내 감정을 완전히 통제하게 됐지만, 좀 이상한 일이 생기면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는 큰 통찰을 얻게 됐다고 했다. 

매 회기 상담 후에는 종종 부모와 통화를 하면서 ‘고슴도치처럼 서로 보듬는 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엄마와의 관계, ‘강압적, 감상적, 무뚝뚝하게, 어색하게’ 생각이 드는 아버지와의 관계도 건강해졌다고 보고를 했다. 특히 입대 전에는 특별한 어려움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다가 막상 군에 와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 대학 가고 안 가고, 좋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많은데서 더 이상 자신감을 느낄 수 없었고 참 한량처럼 살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통찰을 얻었다고 했다. 더 이상 자살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살충동 느끼던 군 가족에게 찾아온 변화
상담을 시작하기 달포쯤 전 부대관사 앞길에서 세 살 된 딸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다니는 내담자(32세·여·대졸)와 인사를 나누게 됐다. 작은 키에 야위어서 왜소하게 보였고 핏기가 없는 얼굴에 표정도 없었다고 느꼈고, 갸름하게 쳐다보는 아기와 함께 애처롭다는 느낌이었다. 장교 남편의 권유로 시작된 군 가족 상담은 아기가 잠을 자는 오후 3시쯤 관사 아파트에서 이뤄졌다. 약속하고 방문한 아파트 거실은 많이 어지럽혀진 상태였고, 작은 목소리로 ‘두서없다’면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내담자는 매 상담시간 동안 여러 차례 울컥하여 눈물을 쏟고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현재 내담자가 혼란스럽게 경험하고 있는 극심한 우울감, 외로움, 자살충동의 정서는 ‘난장판이었던’ 양육환경과 가족관계가 배경이 되어, 심리검사 결과도 임상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관심과 인정,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는 내담자의 황폐해진 심리환경은 동네 빚쟁이들 때문에 외국으로 ‘도망가버린’ 엄마의 부재, 다른 살림을 차린 아빠의 부재, 여동생, 남동생과 겨우 할머니한테 의지해서 살았던 그 시절에 이미 돌이킬 수 없게 가슴 속에 박혀버린 대못이었다. 
 

이제 내담자는 ‘다 내려놓고 싶다. 나의 장래는 없고, 나의 앞날은 끝, 내 능력을 모르겠고, 결혼생활은 실패, 야망도 없고, 내가 이렇지 뭐 내 주제에, 언젠가는 죽겠지’라는 생각으로 무망감, 좌절감, 분노감, 배신감 등이 복합적으로 재경험 될 때마다 ‘죽을까, 죽을까, 죽을까’하는 자살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한편, ‘내 엄마한테 받았던 스트레스, 말, 행동을 절대 안 할 거라는 생각, 우리 엄마만큼만 안 하면 된다는 생각’이지만, ‘아기한테 집착’하는 내담자는 종종 아기한테 목청껏 욕설하고 쥐어박기를 했다. 상처투성인 엄마, 아빠와의 피폐해진 관계감정을 아기와 남편과 부부관계에 투사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면 좋아지겠지’하며 아기를 낳고, ‘노력해야지’하며 잘 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재택으로 돈을 벌고 있는 극복 욕구의 자원을 가지고도 있었다.

8개월 동안 15회기의 상담이 이야기치료 기법, 빈의자 기법 등으로 이뤄졌다. 10회기 때 자살충동이 80~90에서 2로 낮아졌고, 자살 방법과 자살관련 영상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일을 그만두게 됐다. 우울감도 양호해졌고 자존감과 양육스트레스척도에서도 양호 결과가 나타났고, 종결 시에는 ‘많이 좋아져서 혼자 이겨낼 수 있다’는 소견을 피력했다. 종결 후 상담사에게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을 보내왔다.


상담사가 경험한 군 상담사례 현황
군의 상담제도는 2005년부터 초기 3년간은 0명의 상담사(관)로 시범적용됐고, 2008년부터 육해공군에 본격 시행되면서 각 군별 상담사(관) 수의 변화가 있었다. 본 제도운영이 병영 내 의사소통 경로확보와 사고예방, 지휘부담 경감에 기여하고, 부적응 병사 및 초급간부 관리에 도움이 되며 특히 자살사고 예방에 크게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산 전 종법사가 둥근마음상담연구센터 연구원에게 내려 준 ‘마음병 의사’ 휘호의 소명을 늘 생각하는 당 상담사가 4년 동안 두 부대에서 장병과 군 가족에 대한 상담사례는 각각 260명, 211명인데, 군의 ‘신인성검사’의 척도를 통한 분석은 다음과 같다.

‘정신건강상태’영역으로 41~42%, ‘대인관계양상’영역으로 15%, ‘자살위험’영역에 8~9%, ‘추가영역’으로 35%로 나타나고 있다. 

적응척도인 ‘정신건강상태’영역에서 첫째, ‘정서문제’는 내담자들이 기본적으로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며 둘째, ‘행동문제’에서는 ‘욱’하는 충동성과 억압되어 온 분노감을 호소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셋째, ‘사고혼란’에서는 과대자기를 의식하면서 대인관계 민감성이나 피해의식과 피해사고 등의 탐색이 대부분이다. 적응척도의 다른 하나 ‘대인관계양상’에서는 자유 욕구가 매우 강한 MZ세대의 혼자이기를 좋아하는 내성적 성향과 사회기술의 부족으로 대인관계 미숙과 인간관계 갈등이 대부분 탐색된다.

‘자살위험’ 척도로는 ‘힘들어서, 적응할 수 없어서 자살을 생각한다’거나 자살의도의 자해, 과거 학창시절의 자살시도 경험 등이 주로 탐색되고 호소하는 문제이다. ‘추가영역’에서는 특히 입대 전 가족관계에서의 문제, 예를 들면 부모의 이혼과 성장 과정에서 관심을 받지 못한 정서경험, 가족폭행에 노출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억압받고 통제되는 과정에서의 가족갈등 등이 호소하는 문제의 대부분이며, 이런 내담자의 호소는 적응척도의 반응에도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군은 부조리한 병영문화를 꾸준히 개선해오고 있지만 후기 청소년 나이인 20대 전후 병사들이 청소년기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정서 경향이 남을 괴롭히고 괴롭힘을 당하는 양상으로 지속되는 부분과 학교생활에서 따돌림을 받은 경험이 부대에서 피해경험과 심리외상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둥근마음상담연구센터

[2022년 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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