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안 부산울산교구 봉공회장
최도안 부산울산교구 봉공회장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홍수재해, 태풍, 코로나19 등 긴급구조요청에 말없이 달려와 함께 돋보기를 쓰고 몇 시간씩 재봉틀을 돌리며 수천 장의 마스크를 만들고, 산사태로 묻혀있는 집에서 맨손으로 파낸 흙더미를 산 아래 좁은 골목길로 지어 나르는 열정과 정성,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바로 부산울산교구 봉공회원들이다. 원봉공회 부산지회 45년의 역사 중 25년 동안 2만8천여 시간을 기록하며 단장·중앙·부회장을 거쳐 현재 5년째 봉공회장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인타원 최도안(仁陀圓 崔道安·69·서면교당) 교도를 만났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라도 손을 내미는 따뜻한 미소가 매력인 그는 소외된 이웃에게 ‘훈훈한 밥’을 책임지고 있는 부산봉공센터의 중심이다. 

 

6년 전 ‘1만 시간 명예장’, 25년 봉공활동 2만8천 시간
가장 소중한 봉공은 한 끼 따뜻한 밥 제공… ‘훈훈한 밥집’
끊임없이 무아봉공 체크하며 챙기고 또 챙기는 생활

끊임없이 챙기고 챙겨 편안한 길, 도안
원기72년, 그의 나이 34세에 개금교당에 입교하면서 그는 이미 봉공인으로 프로그래밍돼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남편을 따라간 교당 나들이에서 만난 교도가 교당 창립 초창기라 교무님 고생이 많다는 말에 자석처럼 끌려 돌아오는 일요일부터 교당에 나간 것이 지금까지 36년 동안 거의 결석 없이 한결같이 불단에 엎드려온 세월이다. 

“교당에 나가기 1년 전부터 이미 일원상서원문, 반야심경 등의 독경과 웬만한 성가는 다 외웠어요. 아침, 저녁으로 테이프로 독경을 틀어놓고 무슨 말인지 몰라도 매일 들었거든요.”

막내를 대학에 보내고 교당에서만 하던 봉공활동을 교구로 옮겨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봉공회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장애인 시설인 천마재활원 봉사부터 시작했다. 빨래, 청소, 목욕 봉사 등을 위해 두 겹, 세 겹 마스크를 쓰고도 시설에 들어서면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이고 벽에 흘려놓은 오물들을 치우며 자신도 모르게 올라오는 구역질이 그렇게 미안했다. 

“장갑을 끼고도 비위가 상해 힘들었는데 맨손으로 주저 없이 청소하고 빨래하는 선배님들을 보고 거기서 다 배웠습니다. 그때의 마음이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지요.”

‘1만 시간 명예장’, 하루에 4시간씩 7년을 해야 모이는 시간인 1만 시간을 누적 기록한 자원봉사자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그는 6년 전에 이미 받았고 현재는 부산울산교구 봉공회원들 중 가장 많은 시간인 2만8천여 시간을 누적 기록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시간을 기록한 시기만 계산해봐도 거의 매일 6시간 이상 활동한 셈이다. 
 

부산역 노숙인 돕기 훈훈한 밥집 행사.
부산역 노숙인 돕기 훈훈한 밥집 행사.

“남편이 ‘봉공회 공무원’이라며 지인들이 전화하면 ‘출근했다’고 말합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은 저를 직장 다니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더라구요.”

매일 아침 은혜마트로 출근하고 저녁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일상이다. 어린 손자를 돌봐야했던 시절에는 아이를 데리고 봉사를 다녀 봉공회원들이 가끔 성인이 된 손자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눈앞에 주어진 일은 어떤 일이든 거부하지 않고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그도 교구 봉공회장을 맡아야 할 때는 처음으로 거부를 해봤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봉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나 앞에 나서는 일만큼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당시 봉공회장의 갑작스러운 유고로 부회장이던 그가 뒤를 이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 늘 그래왔듯이 또 받아들였다. 

그렇게 처음에는 1만 시간을 꼭 채우고 싶던 바람이 어느새 2만 시간을 넘어 3만 시간이 돼가고 있다.

“이 공부를 어디서 하겠어요. 참 감사한 세월입니다.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는 것이 입으로가 아닌 저절로 몸에 붙게 만든 세월입니다. 이 법을 만나지 않았다면, 봉공활동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겠지요. 상대에게 꽂혀 네 탓이라고 원망하고 다니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원기106년 김치나눔행사는 하단성적지에서 870상자를 버무렸다.
원기106년 김치나눔행사는 하단성적지에서 870상자를 버무렸다.

봉공은 내 삶의 전부
오랜 봉공활동이 그에게 남긴 것은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 마음속을 돌아보는 습관이다. ‘나’가 있고 없음이 봉사와 봉공을 가른다. 끊임없이 무아봉공을 체크하며 챙기고 또 챙기는 생활, 신앙이고 수행이다. 챙기고 챙겨서 편안한 길, 바로 도안(道安)이다. 
“처음 법명을 받았을 때 갈팡질팡 헤매지 말고 한 길로 똑바로 가라, 그 길이 편안한 길이라고 하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제 삶의 전부인 봉공활동이 저의 길입니다.”

25년의 봉공활동은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을 깨끗하게 씻겨 주고, 산사태로 무너진 흙더미를 치워내고 가전 도구를 되살리며,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학교에서 자기네 나라 음식으로 타국 생활의 어려움을 위로하고, 늘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교구 내 기관을 찾아 손을 보태는 등 모두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가 가장 마음을 쏟는 일은 밥을 굶는 사람들에게 한 끼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는 ‘훈훈한 밥집’이다. 

“코로나 이후로 노숙인들 무료 급식처가 대부분 문을 닫아 부산역 주변 노숙인들 처지가 말이 아니에요. 올해부터는 매주 토요일 진행하는 남부민동 무료 급식 활동 중에서 마지막 주는 부산역 노숙인도 추가하기로 결정했어요. 도시락 개수가 두 배로 늘어 회원들 수고가 더 많겠지만 밥 굶는 사람을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무료 급식에 자주 오는 사람 중에 암을 앓고 있어 죽을 끓여 갖다주기도 하는 등 어려운 사람을 보면 누구라도 마음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그. 사람 마음은 똑같아 막상 봉공활동에 참여해보면 열심히 하게 돼 있어 본인의 활동이 특별한 것이 없다며 자꾸만 손사래를 친다. 

봉공활동 25년 동안 개인적인 친구 관계가 모두 사라지고 오직 교단 일만 남았고, 매일 밤 9시에 교당 밴드로 진행되는 저녁 수행정진 시간 18개월 동안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듯이 그에게는 사가 없고 오롯이 공만 있다. ‘봄 바람은 사(私)가 없이 평등하게 불어 주지마는 산 나무라야 그 기운을 받아 자라’듯이 오늘도 신 있는 산 나무가 되는 길. 그가 가는 길 도안(道安)이다.
 

부산 산사태 침수 피해 긴급 구호활동 장면.
부산 산사태 침수 피해 긴급 구호활동 장면.

[2022년 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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