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해 기자
장지해 기자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가까운 지인의 이야기다.
이른 아침, 식사를 하려고 어떤 식당에 들렀다. 그는 밥을 먹고, 밥값을 현금으로 계산한 후 거스름돈을 받아 나왔다. 그런데 천 원이 손에 더 쥐어져 있었다. 가게로 되돌아간 그는 “저기, 거스름돈을 더 주신 것 같은데요” 하고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주인이 말했다. “오늘 하루 행복하시라고 천 원 깎아드린 거예요.”

그러고 보니, 지난번 이 식당에서의 기억이 또 하나 떠올랐다. 그때도 주인은 밥값 천 원을 깎아줬다. 그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자 주인은 “잘 생기셔서 천 원 깎아드리는 거예요”라며 웃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약간 들떠 있었다. 그러면서 “그때도, 이번에도, 가게 주인의 말과 거스름돈 천 원 덕분에 하루가 온통 행복해지더라”고 말했다.

이건 나의 이야기다. 월간원광사에서 9년을 근무하다가 원불교신문사로 인사이동을 했다. 덕분에 교무가 된 후 처음으로 중앙총부 가까이에서 생활을 하게 됐다. 이동 후, 서울에서 알던 지인들과 연락이 닿으면 모두 한 마음인 듯 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밥은 어떻게 해요?”가 그것이다. 그때마다 내 대답 역시 같았다. “총부에서 먹어요. 총부 밥, 엄청 맛있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맛이 있다. 언젠가는 사무실 식구들과 외부로 나가려다 “오늘 점심 메뉴 정말 좋던데”하며 다 같이 발걸음을 되돌린 적이 있을 정도다. 맛있는 밥 덕분에 중앙총부 가까이에서 근무하는 것이 행복하기까지 하고, 저녁 식사도 챙겨서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마음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큰 데 있지 않다. 작은 말 한마디, 단돈 천 원, 맛있는 밥 한 끼가 마음을 살리고 행복을 만든다. 말 한마디에, 추가 거스름돈 천 원에, 맛있는 식사에 누군가의 하루와 매일매일이 행복해진다면, 이만큼 ‘가성비 갑’인 일도 없다. 작은 무언가로 인해 내가 행복했다면, 남도 내가 그리할 때 행복해할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살리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밝힌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생각하는 법’에 대한 법문이 요즘 자주 마음에 들어온다(『대종경』 인도품 12장).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섭섭하거든 나는 남에게 그리 말고, 내 마음에 만족하거든 나도 남에게 그리하라’는 구절이 더 깊이 새겨지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단 구성원들이 각자의 기관, 교당, 가정에서 ‘작지만 따뜻한 마음 하나’를 수시로 주고받으며 행복해지면 좋겠다. 거창해야만 혁신이 아니다. 말 조각 하나, 마음 조각 하나에서부터 혁신이 시작된다. ‘나’와 ‘너’가 행복하면, ‘우리’가 행복해진다.

[2022년 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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