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세천 교무
고세천 교무

[원불교신문=고세천 교무] 지난해 말 원불교신문사 기자 교무에게서 “새해부터 원불교신문 설교란을 채워주었으면 한다”는 부탁을 받았는데, 이후 담당 기자가 인사이동 돼 내심 부담감이 사라졌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기자 교무로부터 다시 원고청탁 전화가 왔다. 전임자로부터 받은 인수인계가 계속 유효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나를 설득했고 공격과 방어의 몇 수 끝에 아래와 같은 이유로 수용했다.

교화현장에 있는 전무출신 사이에 불문율이 있다. 시비를 논하여 싸워서는 안 되는 두 부류가 있는데, 첫째는 재가 교도님이고 둘째는 후배 교무라는 것이다. 이들과 싸워 이겨도 본전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나름 교화현장을 지키면서 출가교역자로서 자부심이 드는 시간은 의식 진행과 법회 설교시간이다. 특히 머리가 굵어가는 50대 중반에 들어 교리를 연마하여 교도님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은 전무출신 삶에서 제일 영광된 순간들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주세하는 
세상의 키워드는 
물질개벽이다
물질의 선용은 인류의 지향점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우주가 성주괴공으로 순환하여 선후천이 교역(交易)되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를 보냈다. 그것도 아시아 변방 식민지 지배를 받는 조선에 태어나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기에 인류를 구원할 희망의 싹을 틔우고 떠나셨다.

박중빈 소태산 대종사(1891~1943)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선 전라도 영광땅 백수면 길룡리에서 20여 년의 구도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당신의 대각(大覺)을 확인하려 이웃종교인 유불선 3교와 동학, 기독교의 경전들을 열람하였고 “나의 안 바를 옛 성인들이 먼저 알았도다”하여 선성(先聖)들을 인정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원불교가 이웃종교들과 보편종교로서 종교화합으로 가는 마중물이 되었다.

26세의 젊은 소태산은 깨달음의 안목으로 당시의 시국을 관찰하였다. 20세기는 전쟁의 시기라 할 정도로 세계는 1차, 2차 세계대전 등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는데,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1916년의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전쟁은 전 세계의 경제를 두 편으로 나누는 거대한 강대국 동맹들의 충돌이었다.

당시의 조선은 일본이 강제로 병합하여 침탈했다. 일본은 한반도를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 삼았고 이에 맞추어 전기의 보급, 철로건설, 우편제도, 전동차 등 물질의 근대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준비 없는 조선은 속절없이 어려움에 빠져들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전체적인 시국의 진행방향을 물질개벽으로 보았다. 물질개벽은 1760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증기기관으로 대변되는 1차 산업혁명이 그 출발이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대량생산이라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석탄을 연료로 하여 면직, 기차, 배, 자동차 등 혁신적인 발전이 사회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이후 1860년 즈음 전기가 발견되는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 증기를 쓰던 시대를 마감하고 전기를 새로운 에너지로 사용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지금 우리들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전화기, 라디오, 텔레비전, 축음기, 세탁기, 청소기,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들이 발명되었다.

전기의 발견은 화학, 기계 및 철강 분야에서 기술 혁신으로 진행됐다. 이에 강대국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아 유럽 국가가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를 침략하고 그 흐름에 늦게 동참한 나라들이 기존의 질서와 충돌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한편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여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펼쳤다. 영국을 비롯한 서구로 젊은이들을 보내 시대의 흐름을 배우고 신흥 강대국인 미국와 제휴하여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젊은 소태산 대종사는 이런 세계사적 흐름을 ‘물질개벽’으로 압축하였다. 또한 물질개벽이 가져오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제시하였다. 밝은 면은 기술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의 삶을 무한히 편리하게 하는 ‘좋은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대종경』 전망품에 나온 법문 ‘소태산 대종사 당대 선진들이 육일대재 때 추모담으로 들려준 뻥쟁이 대종사 일화’가 그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이제 100년 전 유럽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이 되었으니 원기100년 안에 참여한 제자로서 감회가 새로울 뿐이다.

어두운 면은 물질 즉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물질 만능병’에 걸려 사람의 도리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돈을 구하고자 예의와 염치를 잃어버리고 돈에 정신이 팔려 신경쇠약자가 되며 자신과 가정을 망치는 패가망신(敗家亡身)에 빠지고 극도에 들어가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6세의 소태산 대종사는 물질이 득세하는 새로운 시대에 앞으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을 알려주었다. 그것이 정신개벽이다. 정신개벽은 소태산 대종사의 법인기도에서 정체성이 나온다. 『대종경』 서품 13장을 보면 “지금 물질문명은 그 세력이 날로 융성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은 날로 쇠약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지니, 세상을 구할 뜻을 가진 우리로서 어찌 이를 범연히 생각하고 있으리요. 그대들은 이때를 당하여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질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천지에 기도하여 천의에 감동이 있게 하여 볼지어다.”

물질을 잘 사용하는 것을 선용(善用)이라고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우리 모든 인류가 물질에 끌리지 않고 즉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자본을 잘 부려 쓰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다. 이 땅에 많은 종교가 있고 좋은 가르침이 있지만 원불교가 나온 정체성은 “물질의 선용”에 있다.

소태산 대종사가 주세(主世) 하는 세상의 키워드는 물질개벽이다. 5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지능을 능가 한다 하더라도 물질의 선용이라는 정신개벽을 잃지 않으면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물질의 선용은 과학과 종교를 넘나드는 공통분모이며 인류의 지향점이다.

[2022년 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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