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음력 1월 15일은 민속명절 중의 하나인 정월보름날이다. 정월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이란 뜻으로, 예로부터 이날 보름달을 보면서 한 해의 복을 기원하며 이웃들과 음식을 같이 나눠먹고, 한 해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했다. 한 해의 첫 보름이자 밝은 보름달의 빛이 마을사람들의 질병과 액운을 쫓아내고 풍년이 오게 해달라고 지내던 ‘동제(洞祭)’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음력으로 일 년 중 가장 처음 맞는 보름날이기 때문에 옛날 농경 사회에서는 그 해 농사의 풍년과 운세를 점쳐보는 날이기도 했다. 

북한도 “정월대보름 명절에 오곡밥을 지어먹는 풍습은 새해에도 오곡이 잘돼서 풍년이 들기를 바라며 오곡이 많이 차려지기를 바라는 우리 민족의 소박한 염원이 담겨져 있었다”라고 설명한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평양의 한 가정에서 오곡밥과 순대, 나물반찬을 준비하고 있다.(사진 왼쪽)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정월대보름 날 학생들의 민속놀이와 달구경을 위해 모란봉에 나온 여성들이 휴대폰으로 사진 촬영하고 있는 모습. 평양의 정월대보름 전통음식들.
정월대보름을 맞아 평양의 한 가정에서 오곡밥과 순대, 나물반찬을 준비하고 있다.(사진 왼쪽)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정월대보름 날 학생들의 민속놀이와 달구경을 위해 모란봉에 나온 여성들이 휴대폰으로 사진 촬영하고 있는 모습. 평양의 정월대보름 전통음식들.

정월대보름이 공휴일로 지정된 이유
남쪽과 달리 북한에서 정월대보름은 공휴일이다. 특히 올해는 2월 16일 광명절(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날) 전날이라 북한 사람들은 연휴를 보내게 됐다. 북한은 2003년부터 양력설과 음력설, 청명절, 추석과 함께 정월대보름을 5대 민속명절의 하나로 지정했다. 공휴일로 지정된 이유가 흥미롭다. 

북한의 설명에 따르면 2002년 2월 어느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를 수행한 일꾼(간부)들에게 식사를 청했다. 그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음력으로 정월대보름날”이라며 “조상 전래로 우리 인민들은 이날에 마른나물 9가지를 가지고 반찬을 만들고 오곡밥을 먹었으며 엿도 달여먹었다. 지금 우리 사람들은 이런 풍속을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생활을 검박하게 해야 하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오면서 전해오는 우리 민족의 풍속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며 “사람들에게 정월대보름이 어떤 날이며 이날에는 무슨 음식을 만들어 먹는가 하는 것과 같은 상식들도 알려줘야 한다. 달력이나 탁상일력에도 정월대보름날이라고 써넣는 것이 좋겠다”고 지시했다. 이듬해부터 북한은 단옷날 대신 정월대보름을 민속명절로 쇠게 됐다. 최고지도자의 지시로 주민들 사이에서 잊혀졌던 정월대보름이 갑자기 부활된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월대보름 풍속을 언급한 것은 북한이 내세우기 시작한 ‘우리민족 제일주의’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이 흔들리면서 전통적인 사회주의진영의 국제적 연대보다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를 부쩍 강조하기 시작했다. 음력설을 비롯한 민속명절이 전면적으로 부활되는 때도 이 무렵이었다. 

북한은 이 과정에서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논란이 된 단옷날을 빼고 정월대보름을 5대 민속명절로 추가했다. 중국의 단옷날은 기원전 300년 경 중국 초나라 회왕 때의 충신 굴원(屈原)이 나라가 망하자 이를 한탄하며 5월 5일 강에 뛰어들어 자결한 것을 기리는 제사에서 유래됐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의 단오는 고대국가 시절에 행해진 ‘5월제’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지만 음력 5월 5일로 정해진 것은 중국의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2002년까지만 해도 씨름대회를 여는 등 단옷날을 민속명절로 기념했지만 이후에는 씨름대회 등을 추석날로 옮겨 진행하고 있다. 
 

최근 정월대보름 달구경 명소가 된 평양 모란봉의 청류정에서 평양의 젊은 세대들이 보름달을 감상하고 있다. 
최근 정월대보름 달구경 명소가 된 평양 모란봉의 청류정에서 평양의 젊은 세대들이 보름달을 감상하고 있다. 

곡밥, 달맞이 등 남과 북의 비슷한 풍경
분단 이전 한반도 전역에서는 정월대보름에 깡통에 불을 놓아 돌리는 ‘쥐불놀이’, 달이 떠오를 때까지 생솔가지 등을 쌓아올린 무더기에 불을 놓는 ‘달집태우기’, 지신(地神)을 진압함으로써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다복을 축원하는 ‘지신밟기’ 등의 놀이가 행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 풍습은 남과 북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다만 대보름날 아침 일찍 날밤, 호두, 은행, 잣, 땅콩 등의 견과류를 깨물면서 “일 년 열두 달 동안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원하는 ‘부럼깨기’를 하고, 오곡밥과 나물을 해서 먹는 음식문화는 여전히 남아 있다. 북한에서는 벼, 콩, 팥, 조, 보리 등으로 오곡밥을 만들고, 무잎·고사리·무오가리(무말랭이)·도라지·고구마줄기·호박오가리(호박말랭이) 등 음식 재료들로 나물찬을 만든다고 한다. 

특히 북한에서는 정월대보름에도 냉면을 즐겨먹는다. 이날 평양의 식당들에서는 냉면과 함께 데우지 않은 술을 한잔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기쁜 소식만 듣는다는 ‘귀밝이술’을 봉사한다. 

​정월대보름의 대표적인 풍습은 역시 달맞이다. 북한은 “‘정월보름달을 먼저 보는 사람은 복을 많이 받는다’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졌다”면서 “이날에 둥근달을 먼저 본 사람에게 그해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여 대보름날이면 앞을 다투어 달맞이에 떨쳐나서곤 하였다”라고 설명한다. 

평양의 달구경 명소는 대동강 인근에 있는 연광정과 모란봉이다. 모란봉 기슭에 있는 부벽루에서의 달구경은 ‘부벽완월(浮碧玩月)’이라 해서 평양 8경의 하나로 꼽혔다. 지금은 출입이 통제된 부벽루 대신 인근에 있는 청류정에서의 달구경이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휴대폰이 많이 보급돼 가족, 친구, 연인끼리 모란봉에 올라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북한에서도 젊은 세대들은 스마트폰으로 달이 뜨는 시간을 확인해 시간 맞춰 달맞이 명소를 찾는다. 

정월대보름 날 북한의 신문과 방송은 “정월대보름 명절을 맞이한 오늘 곳곳에서는 학생들의 흥겨운 민속놀이가 펼쳐져 명절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습니다”라며 전국 각지에서 열린 민속놀이 광경을 보도하고, 정월대보름의 풍습을 세세하게 소개한다. 실제로 설날과 정월대보름에는 김일성광장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제기차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기차놀이 등의 민속놀이 경기를 진행한다. 

그러나 남쪽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신세대들도 휴일을 맞아 민속놀이보다는 게임을 즐기거나 빙상관에 가서 스케이트 타는 것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김정은체제 출범 이후에는 ‘우리민족 제일주의’ 대신 ‘우리국가 제일주의’가 공식 선전구호로 자리 잡았다.

아직은 둘이지만 여전히 민속적 풍습만은 하나인 것이 남과 북의 생활문화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체제와 세대교체 속에서 북한의 정월대보름 풍속도도 ‘시대적 변용’을 거치고 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22년 2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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