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사람들에게 ‘혁신’은 꽤나 익숙하고 마땅히 이뤄가야 할 DNA적 요소다. 아마 소태산의 조선불교혁신론에 기인하기에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원불교100년이 가까워 오면서 사람들은 혁신에 더욱 목말라하기 시작했다. 혁신의 기초였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란 코드가 시대적으로는 농경사회에서 지식정보화 사회로 빠르게 재편되고, 교단적으로는 100년이란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변화와 정립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대중의 여망에 발맞춰 교단은 각종 위원회를 구성해 교단변화를 꾀했다. 원불교정책연구소 출범, 수위단원 선거제도 개선TFT, 수위단회 제도 개선위원회, 그리고 교헌개정특별위원회 등을 여러 차례 구성해 변화에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이번에는 3월 교단혁신특별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위원회 활동을 돌아보면 대체로 실망스런 결과를 남기고 활동을 접은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시작은 기대에 부풀었으나 결과를 남기지 못함으로 인해 희망은 실망으로, 실망은 좌절로, 좌절은 절망으로 전이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런 좌절감은 이제 교단 구성원들의 가슴을 파고 흐르는 강이 되었다. 따라서 지난 위원회에서 설계한 안들이 기대에 못 미쳐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폐기된 사실에 대해 먼저 꼼꼼히 짚을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지금 시점을 종교위기의 시대라고 한다. 곧, 원불교 교단적으로도 내우외환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에 우리가 서있음을 직감하지 않는다면 참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 교단혁신특별위원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미묘하다. 과연 희망이 될지, 아니면 또 절망을 선물할지. 기대 반 우려 반, 그래서 마음 약한 사람은 아예 기대심을 꺾기도 한다. 

따라서 교단혁신특별위원회의 첫 출발은 대중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어야 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제일 첫 관문으로 삼아야 한다. 지난 위원회가 성공을 이루지 못한 가장 큰 걸림돌이 혹 소통부재가 아니었는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대중의 생각을 읽어내지 못했거나, 일방적으로 해석해 냄으로 인한 오류’가 혁신의 발목을 잡지는 않았을까. 따라서 지금의 혁신 설계자들은 ‘끼리끼리의 소통’이 사실 ‘우리들의 수다’에 지나지 않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또 대중은 골방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SNS를 통한 소통이 편리하고 용이하기는 하지만, 여기에 얼마나 진심이 담겨있는지도 살펴야 할 사항이다. 사람의 교감능력은 단순히 언어문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직관을 중시하는 수행집단의 교감은 오래전 언어문자를 뛰어넘는 세계에 머물러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혁신의 묘수는 그 누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대중에게 있음을 명심하자. 

[2022년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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