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들 생활 변화시킨 유무념공부
평범한 삶 연습하는 ‘홀로생활’ 프로그램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청소와 식사 준비, 출·퇴근, 마트에 장 보러 다녀오는 일과 세탁 후 빨래를 널고 개는 일 등. 비장애인들이 누리는 ‘보통의 일상’이 장애인들에게는 특별하게만 느껴진다. 따듯하고 원만한 공간 속에서 장애인들의 ‘평범한 삶’을 실현시켜나가는 곳, 느리지만 꾸준히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 사회복지법인 중도원 소속 ‘동그라미’를 찾았다.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인 동그라미는 직업재활시설 ‘동그라미플러스’, 소규모 거주시설(공동생활가정) ‘동그라미은혜의 집’, ‘동그라미 희망의 집’으로 구성됐다. 구도선 원장(교무)은 “원불교의 교리이념을 실행하면서 이웃 시설과 차별화된 모습을 실현하고 싶다”고 기관을 소개했다.
 

동그라미플러스는 지적장애인들이 직업훈련을 받는 곳이며, 훈련이수 후 정직원으로 취업하기도 한다.
동그라미플러스는 지적장애인들이 직업훈련을 받는 곳이며, 훈련이수 후 정직원으로 취업하기도 한다.

119에 장난전화하지 않기
지적장애가 있는 이성준(가명)씨는 불안을 느끼거나 관심을 원할 때면 112와 119에 전화를 한다. 119에 전화를 건 성준씨에게 담당 코디가 정말 몸이 아픈지 물으면 “아니오!”라고 말하기 일쑤다. 몇 번의 장난 전화가 계속됐을 때, 그때마다 시설에 적잖은 소동이 벌어질 때, 성준씨는 오히려 주변의 관심을 끌고 있음에 즐거워했다. 갈수록 문제가 심각해지자 동그라미 사무국장은 성준씨를 불렀다. “119에서 법적인 잘못을 물으면 더는 동그라미에서 도와드릴 수 없어요. 더 이상 이곳에서 머물 수 없을지도 몰라요.” 
안그러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받았지만 소용 없었던 성준씨에게 사무국장이 ‘과제’를 냈다. 과제는 바로 유무념공부. 성준씨는 사무국장과 유무념공부를 수행하기로 약속하고 시설에 계속 머물 수 있게 됐다. 

성준씨가 참여한 과제에는 몇 가지 조항이 있다. 그동안 자신이 조절하지 못했던 행동들, 예를 들면 ‘119와 112 전화하지 않기’, ‘물건 던져 깨지 않기’ 등이다. 그렇게 성준씨의 유무념 공부가  시작됐고 몇 주의 훈련이 지났을 때 그의 행동에 변화가 나타났다. 119에 전화를 거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고, 물건을 던지는 행동도 조금은 안정화됐다. 유무념공부를 활용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바라보게 됐다.

사무국장은 “성준씨가 유무념 과제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경계인지 알아차리며 멈추려 노력한다. 멈추지 못하더라도 끌려간 자신을 바라보며 ‘×’표시를 했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들의 좋지 않은 습관을 변화시켜간다”고 설명한다. 실지로 동그라미에는 이같은 사례가 많아 하나의 자료집으로 만들어져 있다.

동그라미는 이처럼 유무념공부를 통해 이용자들의 생활 변화를 이끌어나간다. 지적장애인들이 유무념공부를 통해 자신들의 습관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며 동그라미는 오늘도 희망을 품는다. 


동창씨의 해외여행
‘동그라미플러스’는 직업훈련을 가르치는 곳이면서 지적장애인들의 직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육포를 만들거나 목공예를 가르치기도 하는데, 어느 정도 능숙해지면 훈련생이 아닌 정직원으로 채용도 한다. 그렇게 훈련생과 정직원을 동그라미플러스에서는 일반 직장과 같이 ‘사원’과 ‘인턴’으로 부른다.

김동창(가명)씨는 인턴사원이 부러운 정직원이다. 인턴들은 배우는 입장이라서 상대적으로 일이 적다. 또한 다른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러 가기 때문에, 동창씨는 자신이 더 고된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지적장애인들은 재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에 단순히 지금 편해 보이는 것을 좋게 느낀다. 동창씨는 가끔 “나도 쟤들처럼 다른 거 하러 가고 싶다”고 투정 부리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김동창씨는 정직원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그리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동그라미플러스에 ‘근로장애인해외연수’가 생기고부터이다. 정직원들은 해외연수를 위해 한 달에 일정 금액의 자기부담금을 예치하고, 직장 지원금을 더해 해외연수를 다녀온다. 
 

오늘도 동창씨는 해외연수비를 내며 “이번 달에도 해외여행가려고 적금 넣었다”고 자랑한다. 인턴들은 부러워하며, 정직원을 향한 꿈을 키운다. 해외라고는 TV로 밖에 본 적 없는 이들에게 해외여행은 말만 들어도 설레는 단어다. 몇 해 전 첫 해외여행을 다녀온 동창씨는 아직 해외여행을 가본 적 없는 이들에게 영웅이 된 마냥 경험담을 자랑한다.
동그라미플러스는 직업훈련을 가르치는 곳이면서 직장이기도 하지만, 경제적 독립생활도 가르친다. 이곳에서 마련한 근로장애인해외연수는 장애인들에게 돈의 가치를 알게 하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의 하나이다. 경제적 관념 인식이 부족한 이들에게 자신들이 벌어들인 재산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써야 할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정직원이 되면 얼마의 돈을 더 받는지를 알고,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 동창씨. 그는 그렇게 경제적 자립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신부가 된 영미씨
동그라미에는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훈련을 위한 ‘공동생활가정’이 있다. 단체생활시설과 별개로 일반 아파트를 얻어 그곳에서 홀로 생활을 직접 해보는 것이다. 물론 주야로 사회복지사의 지도가 있지만, 이곳에서는 스스로 요리나 세탁, 그 밖에 장보는 일까지도 직접 해보며 홀로 생활을 연습하게 된다. 

홀로 생활이 한참인 이영미(가명)씨,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방청소를 한 뒤 저녁식사를 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영미씨는 그동안 이 생활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훈련했을까.

영미씨는 행복하다. 한번씩 내려가던 고향집 동네 오빠와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한 뒤부터 영미씨는 고향에 가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 떨어져 지내던 어느 날, 동네 오빠가 영미씨를 찾아왔다. “더는 오래 떨어져 있지 못하겠다. 이제 결혼해 가정을 꾸리자”며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무일푼 장애인이라는 편견 속에 살아오다가 15년 전 이곳을 처음 찾아온 영미씨는 동그라미에서 직업교육, 공동생활 자립준비를 마친 뒤, 몇 해 전 정직원으로 취업했다.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 영미씨, 이제는 동그라미를 떠나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22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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