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그의 본업은 은행원이다. 그러나 은행원으로 살아온 날보다 클래식과 함께해 온 날의 길이가 더 길다. 그러니 그가 퇴직 후 클래식 관련 방송을 하고, 클래식 전문 강의를 진행하는 것은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최근 『내 마음의 클래식』이라는 책을 펴낸 서기열(법명 상보·죽전교당) 작가. 책에는 그가 6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연구해 온 ‘클래식 감상 노하우’가 들어있다. 흥미 가득 재미 가득, ‘클래식은 지루하다’는 편견이 사라지는 만남이다. 
 

서기열 작가
서기열 작가

300개의 책 속 콘서트
『내 마음의 클래식』에는 100여 주제의 클래식이 사계절에 따라 담겼다. 이별해 가슴이 아플 땐 즐거운 곡이 잘 와닿지 않는 것처럼, 클래식도 상황에 맞게 들으면 더 좋다는 노하우를 담아 분류한 것이다.

‘클래식’이 주인공인 만큼, 단순히 ‘읽는 책’으로 만들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책을 통해 음악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300개가 넘는 QR코드를 삽입한 것이 그 증거다. 칠순인 그가 책에 들어갈 QR코드를 하나하나 직접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덤. 이는 다년간 강의를 통해 ‘오디오와 비디오가 함께 있으면 흥미와 이해가 확실히 더 넓어짐’을 경험하며 고민한 흔적이기도 하다. 보통의 사람들이 클래식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 배려는 또 있다.

“클래식을 편하게 느끼게 하려고 강의하던 형식 그대로를 담았어요.” 한 주제에 쓰인 3~4개의 QR코드는 영화, 광고, 연주회 등의 영상을 다양하게 만나게 한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 또는 지휘자에 따라 느낌과 곡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묘미도 쉽게 맛볼 수 있다. 영상도 EMI라는 영국의 유명 레코드 회사와 각종 음악가들이 베스트로 꼽는 공연과 연주 등을 골라 담았다. 클래식 입문자, 초심자들이 가장 표준화되고 좋은 클래식을 만나게 하는 지침서이기도 한 셈. 온전히 ‘음악을 듣는 사람’의 입장을 우선으로 생각했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책 속에서 300개 이상의 콘서트장을 만날 수 있다고 이해하면 쉽다.
 

사랑의 시작
그의 클래식 사랑은 중학생 때 시작됐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예쁜 종소리에  반한 그는 음악 시간에 선생님에게 곡의 제목을 알아낸다. 그렇게 에밀 발퇴벨의 ‘스케이터스 왈츠’를 시작으로, 그는 한 곡 두 곡 가슴에 남는 클래식을 늘려간다. ‘어떻게 이렇게 예쁜 음악이 됐을까. 도대체 누가 작곡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공부도 하게 된다. 곡의 역사와 배경, 작곡가의 일생 등을 알면 알수록 클래식은 마음에 더 깊이 들어왔다.

전주고를 다닐 땐 오페라 아리아에 푹 빠져 이탈리아어로 된 가사를 무작정 외웠고, 어떤 수업 시간에는 ‘토스카’ 마지막 장면의 아리아를 불러 별난 학생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일찍이 집에 전축을 들인 아버지와 어머니 덕분에 음악을 일찍 듣기 시작한 것이 그의 음악적 감성에 영향을 끼쳤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1981년에 국민은행에 입사해 비서실장, 국제금융부장, 해외사업본부장, 카자흐스탄 BCC 상임이사 등을 지내고 퇴직한 그는 은행원 시절에도 클래식을 많은 이들과 나눴다. 국제금융부장을 할 때는 넓은 부장실 공간을 활용해 스피커를 설치하고 수요일마다 직원들과 클래식 다과회를 열었다. 월급날마다 한 장씩 사 모은 LP가 가득한 집으로 초대도 자주 했다. 모두 ‘클래식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내 마음의 클래식』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내 마음의 클래식』 

은덕문화원 ‘마고 클래식’ 진행
그는 은퇴 후 2014년부터 현재까지 은덕문화원에서 ‘마고 클래식’을 진행하고 있다. 은덕문화원에 ‘마고 카페’가 생길 때 그는 자신이 가진 소장 음반들을 기증하고, 웬만한 공연장 못지 않은 수준으로 음향 시설을 구축하는 데 노하우와 힘을 보탰다. 그러니 “예술의전당에서 만나는 음악 감상회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찬사와 감상이 쏟아질 수밖에. 그는 은덕문화원에서 점심시간에 진행하는 ‘직장인을 위한 클래식’ 강의도 한다. 원음방송에서는 1년간 ‘내 마음의 클래식’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고, 강남교당에서는 ‘이야기가 있는 클래식’ 강의도 하고 있다. 

“원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르게 가야 할 모습 중 하나가 문화적 측면에서 열리는 것”이라고 말한 그는 “음악은 종교적 영성을 깨워내고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기연이 된다. 앞으로는 종교가 문화와 접목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교화현장의 요청에 그가 두말없이 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최근에는 ‘책을 읽고 클래식을 들으며 절절히 위로를 받았다’는 연락도 많아졌다. 그러니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쉽게,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게 클래식을 만나게 하는 ‘클래식 가이드’를 계속 자청할 수밖에. 그는 책 판매 수익금도 모두 공익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행복의 문
이번에 책 작업을 하며 그는 인생의 중간 결산을 하는 듯 했다고 말했다. 음악이 인간의 성품을 고상하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점에서, 한평생 음악을 꾸준히 들어온 자신의 삶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음을 새삼 재확인한 것이다.

“클래식은 이미 우리 삶 곳곳에 들어와 있어요. 바로 옆에 있는 문인데, 그 문을 아직 찾지 못했거나 관심이 없었거나 관망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멀게 느끼는 것 같아요. 음악은, 클래식은, 우리의 감성을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행복의 문이에요.”

[2022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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