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일연 교도
채일연 교도

[원불교신문=채일연 교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고통(苦痛)을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으로 정의하고 있다.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을 반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도 『정전』 고락에 대한 법문에서 “고는 사람 사람이 다 싫어하고 낙은 사람 사람이 다 좋아하나니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간 본연의 속성 때문일까? 제러미 벤담과 같은 공리주의자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표어처럼 가급적 많은 이들이 최대의 행복(쾌락)을 누리는 것이 ‘선’이요, ‘정의’라고 주장했다. 현대 동물해방운동의 문을 연 피터 싱어도 공리주의를 계승했다.

그의 나침반 역시 고통은 적고 쾌락은 극대화되는 사회를 가리키고 있다. 다만 피터 싱어는 고통과 쾌락의 주체를 인간으로 한정하지 않고 쾌고감수능력을 갖춘 동물로까지 확장했다. 그는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존재는 각자의 이익 관심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 이익 관심을 동등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은 종차별주의라고 비판했다.

이후 동물의 고통은 동물복지의 척도이자 기준점이 됐다. 많은 국가에서 동물보호 관련 법제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데 그 보호 대상을 ‘고통을 느끼는’ 동물로 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 역시 제2조 제1호에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 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규정하고 있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척추동물이 아닌 동물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가령 과거에 인형뽑기 기계에서 인형을 뽑듯 바닷가재를 기계 안에 넣어 놓고 뽑게 하는 영업행위 역시 바닷가재가 무척추동물이므로 동물 학대로 인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에는 동물의 고통에 관한 과학적 연구와 함께 보호 대상의 범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스위스가 2018년 동물보호법을 개정해 바닷가재, 게, 새우 등 십각목에 해당하는 동물을 산채로 끓는 물에 넣어 요리하는 행위를 금지한 데 이어 영국 정부 역시 지난해 11월 문어, 게, 바닷가재 등에 대해서도 동물복지법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런던정치경제대학(LSE) 연구팀은 무척추동물 중 두족류와 십각류에 대해 300개 이상의 연구를 바탕으로 통각수용기관의 소유 여부, 통합적 뇌 영역의 소유 여부, 통각수용기관과 통합적 뇌 영역 간의 연결 등 감각의 과학적 증거를 평가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해당 동물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지각 있는 존재’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동물의 범위가 확장되는 동시에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유럽을 필두로 축산에 있어서 감금식 사육을 금지하는 추세이며, 부리자르기, 거세 등 신체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금지하거나 고통 경감조치를 의무화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산란계의 부리자르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어미돼지의 스톨 사육 역시 제한하는 법이 정비됐다. 동물전시에서도 행동 풍부화를 강화하고, 생태동물원으로의 변화를 꾀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동물복지, 동물권의 논쟁에 있어 ‘고통’이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결정하는 필요충분조건인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으며, 모두가 피하고자 하는 고통이 보호의 대상을 가르거나 복지를 위한 기준이 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당분간은 현실에서의 보호와 복지의 기준으로 작동될 것으로 보인다.

/불광교당

[2022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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