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태행산과 왕옥산 사이의 좁은 땅에 우공이란 90살에 가까운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둘레가 700리 넘는 두 산에 가로막혀 왕래가 불편하자 산을 옮기기로 작정했다. 산의 흙을 수레에 퍼 담아서 발해만까지 운반하는 데만도 1년이 꼬박 걸리는 기약 없는 작업이었다. 주위에서는 당연히 허황되다며 만류했다. 이에 우공은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다. 내가 못 이룬 일을 그들이 계속해간다면 언젠가는 산이 깎여 평평한 날이 올 것이다.” 이 말에 산신령들은 적잖이 놀랐던 모양이다. 그들은 옥황상제에게 달려가 우공의 이야기를 전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옥황상제는 두 산을 밤사이에 멀리 옮겨 우공의 뜻을 이뤄주었다고 한다. 『열자』 탕문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공의 이야기를 실지로 행한 사람들도 있다. 중국의 한 공무원은 통행의 불편을 호소하는 산골 사람들의 민원이 가슴 아팠던 모양이다. 하지만 빈약한 지자체의 재정상황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는 마을 주민들과 힘을 합쳐 중장비 도움 없이 5년에 걸쳐 400m에 이르는 터널을 뚫었다. 또 인도의 다슈라트 만지는 열악한 교통환경 탓에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떠난 부인을 추모하기 위해 22년에 걸쳐 정과 망치로만 산을 깎아 길을 만들었다.

또 다른 이야기다.

당나라의 시인 이백이 훌륭한 스승을 찾아 산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을 때다.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난 그는 스승에게 말도 하지 않고 산을 내려와버렸다. 이백이 한 시냇가에 이르렀을 때 한 노파가 바위에 도끼를 열심히 갈고 있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그가 노파에게 물었다. “지금 무얼 하시는 거예요?”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는 중이네.”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바늘이 되겠습니까?”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될 것이네.” 이 말에 이백은 생각을 바꿔 산으로 되돌아가서 학문에 더욱 정진했다.

오랜 세월 끊임없이 노력해서 못 이룰 것은 없다. 시일의 장단이 있을 뿐임을 세상을 좀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단지 조급함이 첫 마음을 흩트리는데, 그 조급함은 내 안에 갇혀 있을 때 발동되기 쉽다. 세상에 널리 쓰려는 마음이 바탕 된다면 조급함은 금방 사그라지기 때문이다. 자리이타를 넘어 자해이타(自害利他), 곧 내가 피해를 보더라도 남에게 이익을 주려는 마음이 앞서는 공심가라면 단시일에 무엇을 끝낼 생각은 애초에 두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동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우리나라 동해와 울진 등에서는 대형 산불이 번져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그 슬픔을 함께 나누고 힘을 합치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공이 되어 세상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어 은혜롭다.

[2022년 3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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