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원로교무
김종천 원로교무

[원불교신문=김종천 원로교무] 조선의 제도 중 가장 착취적이고 폐쇄적이면서 정치 경제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신분제였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모든 백성의 신분을 양인과 노비로 구분하는 양 체제를 시행했다. 노예제도라는 것은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가지고 있었으나, 대부분의 경우 중범죄자나 전쟁포로를 노예로 삼았는데, 그것도 대개 본인에 한정되었고 자손에게 세습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조선사회에서는 전쟁포로나 외국인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닌 일반 백성이 세습에 의해 노비로 규정되었다. 특이하면서도 잔인하기까지 하다.

조선시대 인구 구성비에서 노비의 비율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는 조선 중기까지 인구의 30%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10명 중 3명이 노예로 살았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회였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양반이 노비를 거느리는 신분제도가 조선 통치 체제 안정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불공평한 질서를 바꾸려 했을 때
나타나는 혼돈, 
이를 극복해야 개혁 가능

향촌에 분산해 거주하는 양반 사족들이 다수의 노비와 토지를 소유하고 지배세력을 형성함으로써 다른 계급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거나 저항할 여지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박지원의 『연암집』에 수록된 <양반전>에는 평민이 “양반을 보면 움츠러들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뜰 아래 엎드려 절해야 하며, 코를 땅에 박고 무릎으로 기어가야 한다”고 풍자하고 있다.

노비를 사고 판 기록을 보면 여자 노비가 비쌌고, 힘을 쓰는 청년 노비보다 20세 전후의 여자 노비가 높은 몸값으로 매매되었다. 아마도 미모가 추가되어있다면 ‘상품가치’가 더 있었을 것이다. 노비를 사고 팔 때는 도망을 방지하기 위해 노비와 그 일가 형제자매들을 굴비처럼 묶어 사고팔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에는 노비 도망이 하나의 ‘트랜드’가 될 정도로 노비 엑소더스(대탈출)가 사회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다 주고 돈을 받는 ‘추노꾼’이라는 신종 직업도 생겼었다.

임진왜란 때 한양이 일본군에 점령되자 가장 먼저 발생한 사건이 노비문서를 보관하고 있던 기관인 ‘장예원(掌隷院)’의 화재였다. 보나마나 사회의 불안과 원성이 많았던 한양 노비들의 소행이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양반, 상놈 같은 개념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지만 노비제는 조선에서만 늦게까지 유지되었다. 노비들은 경제력이 있으면 노비에서 평민으로, 다시 평민에서 양반으로 신분상승이 성했다. 정약용이 “온 나라 백성이 다 양반이 되려고 한다”고 이야기한 대로다. 그런데 신분상승의 기록을 보면 서구 혁명의 역사와는 모양새가 다르다. 신분제 사회의 모순을 혁파하기보다는  상부 구조 속으로 편입되기 위하여 노력했을 뿐이다. 프랑스 혁명처럼 사회구조를 바꾼 것이 아니라 양반 사회를 모방하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정치적으로 왕조정치, 사회적으로는 귀족과 평민 또는 양반과 천민이 있는 계급사회였다. 그런 계급이 주종을 이루는 사회가 불공평해보여도 쉽게 뒤집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공평한 질서가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발생하는 사회의 무질서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것은 과거의 이야기나 남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의 심리상태다. 그런 것을 극복해야만 개혁이 가능하다. ‘피’없이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미국이 노예무역을 추억하는 날실루엣 난민들의 손 들어올리기, 일몰의 배경.
미국이 노예무역을 추억하는 날실루엣 난민들의 손 들어올리기, 일몰의 배경.

1948년 UN총회에서는 인권 선언문이 채택되었다. 전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의 부인인 엘리노어 루즈벨트를 의장으로 전 세계의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스위스 제네바에 모였다. 세계대전과 나치즘의 공포정치로 인한 치욕을 겪으며 인류가 비로소 존엄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되었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그러면 ‘존엄’을 지키기 위해 가는 길 위에서 평등권과 자유권이 충돌할 때면 어떤 가치가 우위에 있을까? 평등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면, 어떤 사람들은 ‘기회의 평등’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결과의 평등’을 중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인간의 본능을 깊게 들여다보면 볼수록 현대의 자유 사회가 이나마 조성되고 또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2년 3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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