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는 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나무가 되어야 한다

 

유진경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유진경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유진경(법명 혜원·김포교당). 그가 작업하는 공간 안에 발을 디뎠다. 먼 길 달려온 방문자를 한텀 쉬게 해주는 그. 산미와 바디감이 부드럽게 조화된 커피, 그 향이 유진경 나무공방 안에 가득하다. 
 

나무를 쓰는 일, 그 미안함
나무일을 하면서 나무를 쓰는 일, 그가 제일 먼저 내보인 마음은 미안함이다. 지구를 위해 적어도 자기 몫의 역할은 해야 한다는 생각, 나무를 심는 일이 아닌 나무를 쓰는 일이 여러모로 미안한 그는 원불교환경연대 원에코 기후학교 1기 교육생이다. 자발적으로 신청했다. 나이만큼 나무를 심는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있다. 나무를 쓰는 만큼 참여하자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나무 쓰는 목수의 몫으로,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이 지구를 위해 나무를 심고 있다. 
 

마흔 즈음, 향기로 닿아온 나무
생각이 많아질 때면, 그는 걷는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가정에도 회사에도 소홀함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 그 시기 IMF 외환위기를 맞부딪쳤다. 견디고 버텨내야 했다. ‘처절하고 눈물겨웠다’고 그는 말한다. 퇴근 후 한없이 걷던 날, 그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향기 나는 곳을 향해 나무계단을 내려갔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나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그 나무 향기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무는 그에게 향기로 닿아왔다. 그의 나이 마흔 즈음이다.
 

전통기법을 ‘반드시’ 하는 이유
목가구를 전통기법으로 만드는 목수가 소목장이다. 2013년 소목장 이수자로 인정받은 그는 다음 해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을 취득했다. 마흔 중반, 대학원에 진학해 가구디자인도 전공했다. 전통기법을 생활디자인으로 살려내기 위해서다. 현재 그는 한국의 전통 바둑판을 복원하는 유일한 목수다. 

숨 쉬고 수축하고 팽창하는 나무 본연의 성질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일, 전통기법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못이나 나사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와 나무의 결합으로 짜임과 이음을 맺는다. 흠 안에서 나무가 수축 팽창의 변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한다. 또 전체 힘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면분할도 중요하다. 

그는 ‘우리나라 나무’를 ‘자연 건조’해서 사용한다. 순환하는 기후에 거스리지 않고, 나무가 휘는 때, 터지는 때를 알아야 나무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목수는 나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으려면 내가 나무가 돼야 한다. 
 

아픈 손으로 만든 나의 밥상
5명의 쉼터 여성들과 함께했던 10주의 시간. ‘그녀들이 스스로 밥상을 만들고 그 위에 자신을 위한 따스한 상을 차려 스스로 위로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목공치유 프로그램이었다.

첫 만남 때 젓가락을 조심스레 깎아 나갔다. 다시 만나 숟가락을 깎았고, 4번째 만남부터 전통기법인 주먹장짜임기법과 낙동기법으로 오동나무 밥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지만 품이 들고 소소한 것들이 완성되기까지 서로를 기다려주었던 시간이 흐르자, 그는 치유하는 자가 아닌 치유 받는 자가 되어 있었다. ‘아픈 손으로 만든 나의 밥상’은 지난달 서울 종로구 화동 문향재에 올려졌다.
 

하여 감사하다, 오늘은 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법문사경을 하겠다’는 올해 목표를 ‘지금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는 그. 전통목가구를 만드는 소목장으로 입문한 후 그는 비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속 깊이 깨닫게 됐다. 법문을 사경하고 나무를 깎고 마름질을 하고 이 모든 순간이 그대로 온전하다. 작업장은 금세 원형톱 회전소리, 자동 대패 소리로 빈틈없이 채워진다. 그러나 그 또한 그에겐 물속 같이 조용하기만 하다. 참으로 평화롭고 참으로 행복한 시간, 하여 감사하다. 오늘은 더. 
 

[2022년 3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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