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 깊은 요양시설, 전주요양원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내 부모님 봉양을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에게는 소중한 부모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많은 노인 중 한 분일 뿐. 나의 부모처럼 다른 이의 부모를 모시는 것은 보통의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전주요양원(원장 이양명)은 지역 내에서 효심 깊은 시설로 인정받고 있다. 정말 내 부모처럼 정성으로 모신다는 소문이 지역 내에서 널리 퍼져있는 것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싶은 시설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주요양원을 소개한다.
 

어버이날 행사로 어르신들과 함께 율동하기가 진행됐다.
어버이날 행사로 어르신들과 함께 율동하기가 진행됐다.

자원봉사자·직원들 희생 칭찬
전주요양원에는 현재 161명이 입소해있다. 공실 없이 모든 방에 어르신들이 거주한다. 그만큼 지역사회에서 전주요양원은 신뢰도가 높다. 

전주요양원은 1945년 5월 재가교도들의 발의로 시작, 1949년 6월 완주군 상관면 대성리 오두산 지부장 사저에서 개원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지역에서 역사가 깊은 만큼 전주요양원은 지역민들과의 유대관계도 돋보인다. 지금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멈췄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여 년 동안 매주 20여 명의 봉사자가 찾아오는 곳이었다. 전주시의 자원봉사자 단체인 ‘사랑의 울타리’가 전주요양원과 연계 활동을 펼쳐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 초·중·고등학생 100여 명이 매월 봉사활동을 이어왔고, 나중에는 초등생들의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면서 자원봉사 활동의 규모가 커졌다. 이후 경제통상진흥원 직원들과 시청, 도청 직원들의 자원봉사도 연 2회씩 진행될 정도로 전주요양원 자원봉사는 지역사회의 이름난 활동이 됐다. 

자원봉사자들은 전주요양원 입소자들을 대상으로 목욕 봉사와 음악프로그램 봉사, 산책 봉사 등 여러 봉사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입소자들의 만족도 역시 높아졌다. 그로 인해 전주요양원은 지역민들이 함께 효심으로 모시는 요양시설로 유명해졌다. 입소문이 무서운지라 자원봉사자들도, 입소자들과 가족들도 만족하는 시설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 요양시설이 됐다.

조영옥(법명 소영) 사무국장은 “오늘의 전주요양원이 있기까지 그동안 많은 인연들이 함께해 왔다. 함께 해준 모든 인연이 다 감사할 뿐이다”고 말했다. 이어 조 사무국장은 “특히 직원들이 내 집처럼 관리해주고, 내 가족처럼 어르신들을 돌봐주고 있다. 정말 가족같이 생활하는 직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하며 봉사자와 직원들의 희생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지프로그램 ‘봄꽃 알아보고 색칠해보기’ 시간이다.
인지프로그램 ‘봄꽃 알아보고 색칠해보기’ 시간이다.

가족처럼 살기
전주요양원 치매전담실은 60명 정원의 전국 최대규모 시설이고, 입소자들의 생활 시설과 프로그램 운영도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 장기 요양등급 2~5등급의 수급자 어르신들이 입소 가능하다. 1층은 16인 시설 하나와 12인 시설, 2층은 16인 시설 두 개로 총 4개 시설이 마련돼 있다. 한 개 시설에 4개의 방과 거실, 주방 등이 있으며, 각 방마다 서로 식구가 되어 의지하며 지낸다.

치매 어르신들은 그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거나 시간 감각이 없다. 그 때문에 시간 감각을 익히기 위해 일상생활이 곧 훈련이 된다. 식사 시간에  밥솥 소리를 듣고, 부산하게 식사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밥 냄새를 맡으며 식사 시간을 인지한다. 이러한 생활 방법은 이들의 단체 생활 형태에 일정한 규칙을 인지하는 방법이 되고, 곧 재활훈련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직원들과 어르신들은 함께 모여 여가 프로그램 시간을 갖는다. 어르신들이 노래 교실이나 악기를 다루는 시간을 갖고, 그림을 그리거나 붓글씨를 쓰기도 한다. 때로는 원예 활동도 하고,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현재 전주요양원은 치매전담실 3층에 효행스테이 캠프를 준비 중이다. 장기계획으로 구상하고 있는 이 시스템을 위해 건축설계사무소와도 상담 중이며, 코로나19 상황이 회복되면 구체적인 계획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입소자들과 1박 2일을 생활하면서 어르신을 돌봐드리는 캠프로 어르신들에게는 또다른 가족이 생기고, 봉사자들에게는 효행을 실천해보는 경험이 된다. 많은 봉사자들의 참여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나 때문에 애쓰지”
오래 근무하다 보면 가끔씩 안타까운 일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곳 어르신들은 오랫동안 여기서 생활했기 때문에 이곳이 집이고, 이곳 사람들이 가족이다. 그런데 병고가 깊어져 시설에 있기가 어려워지면 요양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면 정들었던 인연들을 떠나 낯선 병원에서 생활하다가 임종을 맞는다. 

조 사무국장은 “이곳은 요양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이곳에서 병고로 임종을 하면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된다”면서 “그렇게 같이 살던 분이 낯선 곳에서 임종을 맞게 된다는 점은 무척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이곳 직원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고 한다. 이들에게는 어르신들이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생활하던 가족이기에 떠나 보내기가 힘들다고 한다.

입소 어르신들도 직원들이 가족 같기는 한마음이다. 치매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가 안되다가도 어느 날 문득 “나 때문에 애쓰지? 고생이 많네”라는 말을 할 때면 다들 울컥한다. 어르신들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자신들의 생활을, 그리고 함께 생활하는 직원들의 노고를. 직원들도 어르신들도 서로 깊은 정 속에 생활한다. 직장 그리고 입소시설의 개념을 떠나 이들은 진정 가족이다.

조 사무국장은 “우리가 자력이 없을 때 우리를 길러 준 우리의 부모님, 그 부모님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돌려 드릴 때”라면서 “어르신들은 다음 생을 준비하는 마지막을 이곳에서 머물며 준비한다.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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