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광 명예교수
김혜광 명예교수

[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정전』 법률피은의 강령에서 ‘법률이란 인도 정의의 공정한 법칙’을 이름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사요 공도자 숭배에서는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 대중을 위해 헌신함”을 공익심이라고 가르친다. 

일반적으로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버리고 가정, 국가, 사회, 세계의 대중을 위하는 마음을 공익심이라고 한다. 그런데 공익심을 비롯해 교리 가운데 포함된 공익가치들의 선후본말은 분명하게 가리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대종경』 교단품 12~13장에서 살생과 공익이라는 가치 간에 갈등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제2차대전에 참전한 일본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에 대해 자국에서는 애국자라고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전범이라고 한다. 그의 위패가 있는 일본의 신사 참배를 두고 일본의 애국과 국제사회의 평화라는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모습도 목격된다. 어디 그뿐인가. 수위단회에서 명예대호법으로 법훈추서를 결정했지만, 국가에서는 그 인물을 친일 인물로 평가하여 교단과 국가 간 서로 엇갈린 평가를 보게 된다. 어떤 사례에서 교단 내에서는 법규에 따라 파면이라는 중벌이 내려졌지만, 국법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상반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공익가치에 대한 평가나 태도에 있어 상반된 결과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이런 경우 우리는 과연 어떻게 공부 표준을 잡아야 하는가? 그리고 후진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그들이 어떻게 배우도록 해야 하는가? ‘사리사욕 등 개인의 국한을 넘어 공익을 우선한다’고 할 때 과연 어떤 공익이 다른 공익에 우선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인권문제를 결코 개인의 문제로만 한정할 수 없다. 미국이 중국과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에는 정치적 계산도 물론 있겠지만, 인간의 삶에서 기본권이 국가 사회의 보편율에 선행할 수 있다는 논거다. 따라서 개인의 인권문제를 사사로운 개인 문제가 아닌 기본권으로 보는 것도 크게 보면 공익의 범주에 포함해 보는 배경이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공익이 개인의 사적인 이익에 우선한다고 해도 공익을 위해 그럴만한 정당한 사유 없이 개인의 희생이나 헌신을 강요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발적 선택을 전제로 해야 한다. 유대계 도덕 심리학자인 콜버그(L Kohlberg,1927~1987)는 “다양한 가치가 갈등하는 경우 판단의 기준인 관습(공동체의 규범, 주변인의 평가 등)을 기점으로 전후의 도덕적 판단도 달라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익가치에 대해 교단법과 국법 그리고 개인과 집단 간 갈등이 야기되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본적으로는 사적인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익을 우선하는 게 분명한 대전제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인권보다 상위의 보편적 가치이므로 양보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아가 공익도 개인의 자발적 선택을 전제로 하는 것이 진정한 공익의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 된다. 공익가치의 우선순위도 살펴보자. 보편적인 공익가치라 해도 특정 국가나 사회의 그것이 국제사회의 범주를 능가하기는 어렵다. 어느 공익가치가 우선하느냐의 기준은 공익 시혜의 범주에 의해 판단되기에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공익가치가 교단주의, 국수주의, 편협한 국지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원광대학교

[2022년 3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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