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몰려오고 있다. 

육지의 봄은 섬진강을 타고 올라 4월이면 전국을 꽃 대궐로 만든다. 겨우내 기다렸던 설렘이 일시에 빵 터지는 느낌이다. 이맘때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꽃들 못지않게 활짝 핀다.

특히 원불교 사람들에게 4월은 더욱 특별하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이 깨달음을 얻은 달이기 때문이다. 이를 대각개교절, 혹은 원불교 열린 날이라 하며, 원불교 최고의 경축일로 삼는다. 그래서 원불교의 4월은 온통 축제로 넘실거린다. 중앙총부를 비롯 각 지역 교당과 기관들은 여기에 맞춰 일제히 축제를 열고 이웃들과 함께 나눈다. 다 같이 다 함께. 물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 축제도 잠정적으로 소강상태였다.

하지만 올해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축제를 다시 열 태세다. 아니, 2년여 넘게 참아왔던 축제를 다시 활짝 열어 잔치를 벌이려 한다. 축제가 열리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축제가 열린다. 축제는 곧 소태산의 꿈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래서 대지의 4월은 천지의 기운과 함께 더욱 풍성해진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랄까.

4월의 깨침은 소태산에게도 유쾌했던 모양이다. 소태산 재세 시, 20세기 초의 그 암울한 시기에도 깔깔대소회라는, 지금 시대에 비유하면 개그콘서트를 열어 웃음꽃을 피웠다. 강연회를 만들어 각자의 생각을 발표하게 하면서 ‘강연100℃’같은 프로그램처럼 펄펄 끓게 했다. 

또 소태산은 과거 수행자들의 인욕을 안타까워하며, ‘나는 가르치기를 그대들은 정당한 일을 부지런히 하고 분수에 맞게 의·식·주도 수용하며, 피로의 회복을 위하여 때로는 소창도 하라 하노니, 인지가 발달되고 생활이 향상되는 이 시대에 어찌 좁은 법만으로 교화를 할 수 있으리요’라고 했다. 이처럼 울타리가 없는 생활종교의 면모를 잘 갖춘 게 소태산이 지향한 종교라 할 것이다.  

그로부터도 벌써 100여년이 지났다. 세상의 인지는 밝을 대로 밝아졌고, 시간과 공간의 영역에서 세상은 괄목을 넘어 천지개벽이라고 한다. 따라서 ‘지금 원불교’는 이미 울타리를 넘어 내 것과 네 것이 없는 시공간의 영역에서 움직여야 한다.

다시 돌아가자. 4월은 원불교에 있어 모든 경계를 허물어 만인이 동참하는 축제의 연속이어야 한다. 그럼, 먼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잔뜩 움츠렸던 총부부터 열어야 할 것 같다. 꽃 피는 4월이면 익산 사람을 비롯 전국의 인파들이 원불교 총부라는 축제의 장으로 모일 방도를 찾아야 한다. 또 4월에는 전남지역 사람들이 영산성지로 모여 축제를 벌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4월의 총부가, 영산성지가 조성된다면 소태산의 대각은 더욱 빛날 것이다. 그래야 각 지역 교당들이 열릴 것이고, 지역민들에게 ‘4월은 곧 원불교’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오래오래 하면 안 될 일이 아니다. 4월의 원불교 축제를 세상에 전하자.

[2022년 4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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