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그는 말했다. ‘내가 만났고, 언젠가는 만날 사람까지’ 모두 ‘인연’이라고. 사람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했던 식물, 내가 쓰고 있는 시, 내가 읽은 책, 내가 봤던 풍경까지도. 나에게 왔던 모든 것, 나에게 왔던 모든 인연으로 나라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그래서 붙인 제목 『내게 왔던 그 모든 당신』. 이맘때, 딱 이맘때, 꽃망울 터트리는 목련에 마음 둔 날, 저자 안도현 시인을 만났다.
 

안도현 시인
안도현 시인

1부 좋은 사람들
아름답다는 게 멀리 있지 않다. 그가 만났던 사람들 속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여기 이런 사람이 있어’라고 말하고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의 마음에도, 책에도 담겼다. 

운전면허증도, 휴대전화도 없지만 바람을 가르는 이마 아래 눈빛 맑은 선비 김기현 선생, 부안시장에서 물메기탕 잘 끓이는 장순철 여사, ‘언어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는 사람이 시인’임을 일깨워준 도광의 선생님, 그(안도현)보다 시를 잘 쓰는 열 살 꼬마시인 이건, 술 마시는 실력은 그가 한 수 위임을 자랑하게 하는 친구 정진섭. 

‘버섯의 벗이 되려면 버섯보다 큰 내가 먼저 버섯의 높이로 땅에 엎드리면 된다’는 깨달음은 김성호 교수에게서 배운다. ‘아름다우면서 쓸모없기’를 꿈꾸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꼬집어 주는 후배 시인 김민정도 밉지 않다. 공개적으로 ‘시 쓰는 후배 중에 유강희 시인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이유도, 봄꽃 같은 제자 이정민도, 그가 아는 가장 진보적인 할머니 선쌍임 여사도,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사람들’이다.
 

『내게 왔던 그 모든 당신』은
코로나19 이전, 
정상적인 일상의 시간과
세상의 발걸음이 멈춘
비정상적인 시간이 맞물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간의 힘을 믿고 살아간다’는
그의 마음이, 읽혀진다.

2부 몸속 잎사귀를 꺼내 흔드는 날
서른 중반 이후, 그는 식물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대한 눈이 달라졌다. 식물의 이름을 아는 일은 ‘그 존재의 입구로 들어서는 일.’ 그는 식물의 이름을 맨 처음 붙인 그 사람이 바로 둘도 없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식물의 이름을 하나씩 익혀가면서 그는 ‘생태적인 상상력이 우리 삶에서 왜 중요한지’를 덤으로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작은 풀꽃의 이름 하나가 ‘깊은 사유’라고 부를 만한 우주 속으로 그를 이끌고 간 것이다. 

2부에선, 그가 혼자 숨겨두고 그리워하고 싶은 자작나무 숲에 닿는다. 그곳에선 아마도 ‘자작자작’ 몸속 잎사귀를 꺼내 흔드는 자작나무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아는 한 가장 아름답고 기품 있는 정자 주위, 수백 년 된 소나무와 참나무의 고졸한 멋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식물을 통해서 사람을 보려고 한다. ‘세상에 대한 지대한 공헌보다 오히려 한 사람의 인간적인 약점이 마음을 쓰라리게 할 때가 많다’는 것을. 결국 식물도,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3부 그래도 살아갑니다
그는 4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경북 예천의 산골짜기, 그는 이곳에서 ‘봄에는 꽃밭에 심을 것들을 궁리하고, 가을에는 봉투에 꽃씨들을 받고, 헛간 벽에 무시래기를 내걸고’ 산다. ‘말수를 줄이고, 크게 소리 지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이 와중에 ‘간신히 책 한 권을 낸다’는 그. 『내게 왔던 그 모든 당신』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시간이 맞물려 있다. 정상적인 일상의 시간과 코로나19로 세상의 발걸음이 멈춘 비정상적인 시간이 겹친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간의 힘을 믿고 살아간다’는 그의 마음이, 그의 책 3부 그래도 살아갑니다에서 읽혀진다.

“살면서 누군가에서 어떤 영향까지는 아니고 감흥을 주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글을 쓰면서 산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그가 〈문학 자산의 기억방식〉을 말한다.

“시에 소리를 더하면 낭송이 되고 곡을 붙이면 노래가 된다. 시가 그림을 만나면 시화가 되고 몸짓을 가미하면 무용이 된다.”, “우리의 문학 자산을 발굴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시골의 쓰러져가는 정미소를 문학정미소로, 사라져 가는 사진관을 문학사진관으로 리모델링 하자. 지자체에서 조성하는 공원을 누구의 문학공원으로, 작가가 졸업한 학교의 도서관을 누구의 문학도서관으로 명명하자.” 

그리고 내 마음에 새겨지는 한 줄, “책이 응원하는 삶, 그거 멋지지 않은가.”

[2022년 4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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