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일관된 서예정진으로 선 생활
‘처처불상 사사불공 실천이 곧 정신개벽’ 강조
“문화와 공감대로 세계와 소통하자”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한국 서예계의 거목인 그의 모습은 붓끝처럼 부드럽고, 먹빛처럼 선명하다. 어느덧 일흔과 팔순의 중간지점에 선 가산 조대성 원로교무(可山 曺大性·75). 지금도 그는 꾸준히 작품활동을 한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영자필법을 배우며 붓을 처음 잡았던 것이 한평생 길이 되었다. 전무출신 서원 당시 ‘나를 위하고 원불교 문화를 위한 서원’이 함께 섰고, 지금까지 흘러왔다. 그렇게  동양 최초로 설립된 원광대학교 서예과의 발전과 원불교 문화창달에 기여했다. 송죽헌(松竹軒)이라 이름 붙여진 그의 작업실에는 아직도 열정이 가득하고, 동양사상의 정수들이 샘솟고 있다. 
 

가산 조대성 원로교무.
가산 조대성 원로교무.

서예 대가에게 듣는 서예철학
조 원로교무는 교역생활 전체를 원광대학교에서 보냈다. 교직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것이 이후 서예과 교수로 이어지면서다. 그 기간 중 그는 작가로서의 활동도 쉬지 않았다. 1979년(원기64) 국전 입선을 시작으로 그간 수많은 개인전을 열었고, 2011년(원기96)에는 미주총부 원다르마센터 개관 기념 개인전을 통해 한국서예문화를 외국에 알리기도 했다. 현재는 3월 24일부터 4월 20일까지 전남 곡성에서 ‘현대전각 4인전’도 열리고 있다. 평생 붓을 잡아온 그는 명실상부 한국 서예계의 거장이자 원불교 서예의 대가로 칭해진다.

조 원로교무에게서 서예 철학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일은 흥미로웠다. 먼저 ‘서예는 음양의 조화’라는 점이 그랬다. “서예 작품에 들어가는 낙관은 음각과 양각을 한 세트로 하는데, 낙관에서부터 음양의 조화를 맞춰요. 음양의 조화가 담긴 것이지요.” 설명을 듣고 나니 그동안 흘려보았던 낙관의 음양이 눈에 들어온다. 조 원로교무는 “서예는 문자를 가지고 하는 예술”이라며 “먹은 천변만화의 색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 획에 실수가 나기 쉽고 욕심껏 덧칠할 수 없어, 글씨를 쓰거나 전각을 하는 것은 전신의 힘으로 땅을 뒤집는 ‘삽질’을 할 때처럼 온몸의 힘이 쓰인다고 했다. 그래야 제대로 된 한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작품을 위한 종이와 돌 등 여러 소재가 가득했다. 5년 뒤 팔순 전시회를 계획하며 정리 중인 그간의 작품들도 여럿 꺼내져 있었다. 여전히 미래를 그리는 그의 눈에는 예술을 향한 열정이 반짝였다.

천생 원불교 사람
조 원로교무는 모태신앙으로, 친가와 외가 모두 원불교 집안이다. 『대종경』에 등장하는 회산 조원선 선진이 조부, 응산 이완철 종사가 외조부다. 그런 집안 내력을 따라 당연히 전무출신을 하려고 영산선원에서 간사생활도 했지만, 어떤 연유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타지 생활을 하던 중 아버지의 권유로 익산에 내려오게 됐다. 출가를 하려고 다시 서원서를 내고 원불교학과 입학 절차를 밟았지만 나이 제한에 걸려 입학하지 못했다. 하지만 원광대학교 교직원이 되면서 자연스레 전무출신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총무과 주사와 인사과 주임 등의 역할로 낮에는 근무를 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니며 공부했다. 와중에 틈나는 대로 서예를 했다. 그러다 입선과 특선을 하게 됐고, 우연자연 서예과를 만드는 일을 담당하게 됐다. 그러다 교수가 되었으니, 교직원들에게 그는 희한한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평생 근무했지만, 그는 늘 전무출신임을 잊지 않았다. 대학 재직 시에는 매일 총부 대각전에서 좌선을 한 후 출근했고, 정년퇴직 후에는 북일교당에 나가 좌선을 했다. “힘든 순간들을 극복해 온 힘도 좌선, 즉 선 명상을 통해 얻었다”고 할 정도다.
서예가이자 교수로서는 군포에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캠퍼스가 생겼을 때 서예과에 입학하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었던 때가 보람으로 회자 된다. 최초의 한국 서예 교과서인 『한국 금석문 법서 선집』을 발간한 일도 중요한 기억이다. 하지만 정년퇴직 후 자신의 일평생을 쏟았던 서예과가 폐과된 것은 마음 아픈 일로 남는다. 
그럼에도 배출된 제자들이 각계각층에서 여전히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기쁘다. “그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하는 조 원로교무의 표정이 아이처럼 밝다.
 

법성게구 法性偈句- 음각-일미진중(한 미세한 티클 속) 일체진중(모든 티끌 속), 양각-함시방(우주가 포함) 역여시(또한 이와 같다.)
법성게구 法性偈句- 음각-일미진중(한 미세한 티클 속) 일체진중(모든 티끌 속), 양각-함시방(우주가 포함) 역여시(또한 이와 같다.)

끊임없이 조곤조곤 해나가는 마음
대각의 달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말을 해달라는 요청에 조 원로교무는 “우리에게는 대각개교절만이 특일이 아니다”고 했다. 매일이 새롭게 깨어나는 날이 되어야 한다며, ‘매일 새롭게 깨어나 활불(살아있는 부처)로 살아가는 것이 곧 정신개벽’이라고도 했다.
후진들에게는 “쉬지도 말고, 서둘지도 말자”는 말을 건네고 싶다고 했다. 팔순이 돼도, 구순을 앞두고도, 할 수 있는 역량껏 끊임없이 조곤조곤 해나가는 마음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여기에 더해 후진들에게 ‘여기(餘技)를 가지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전공 분야 외에 사진, 수필, 시, 운동 등의 여기 한두 가지는 삶의 활력이 된다는 것이다.
조 원로교무는 원불교 2세기, 세계교화라는 목표에 다가가는 방법으로 ‘문화와 공감대’를 언급했다. “명작은 시대와 남녀노소를 초월한 공감대를 불러일으켜요. 최근 한국이 영화와 음악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잖아요. 그 바람을 타고, 원불교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감대를 준비해야 해요.”

[2022년 4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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