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코스·북촌 코스 이어 남산동 코스 완료
경성출장소 내 집처럼 오가며 청소, 수리 도맡아
“교무들이 먼저 와주길” 다양한 해설단 지원 기대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창신동 코스는 돈암동의 서울교당 옛터에서 끝납니다. 최초의 신축교당이자 소태산 대종사님이 50여 일을 살며 공사를 보기도 하셨죠. 그 표시석 앞에서 순례객들과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말하죠. ‘소태산 대종사님께 여쭙시다. 그토록 찾았는데 왜 이제야 나타나셨습니까. 그러면 소태산 대종사님이 손을 꼭 잡고 답하십니다. 나는 여기서 너를 오래 기다렸는데 왜 이제 왔느냐. 그래, 잘 왔다.’”

정인창 단장(한강교당)의 말에 순례객들의 눈가가 촉촉이 젖는다. 백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생생한 역사, 이 터에만 오면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에 순례 마지막이 고요하다. 소태산 대종사가 처음으로 상경해 창신동에 오기까지, 그리고 돈암동에 서울 최초의 교당을 짓기까지, 그의 차분한 음성은 90여 년전 그날로 순례객들을 이끈다. 이 마법같은 순간을 위해 7년을 연마해온 서울원문화해설단. 서울교화 100년을 찾아올 걸음들을 가장 앞서 맞이할 이들을 만났다. 
 

(좌로부터) 서울원문화해설단 정인창 단장, 박혜현, 안도창, 김시명 교도.
(좌로부터) 서울원문화해설단 정인창 단장, 박혜현, 안도창, 김시명 교도.

코로나19에도 비대면으로 공부 계속 
“이제까지 북촌 코스와 창신동 코스를 주로 순례했죠. 코로나19 상황 동안 남산동 코스를 부지런히 다녔어요. 서울역에서 시작, 남대문역과 태평여관, 숭례문을 이어 남산 정각사, 박문사를 잇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은 재미있는 코스죠.”

담당인 안도창 교도회장(한강교당)이 신나게 소개하는 남산동 코스. 그동안 부단히 마련해온 역작을 내놓는 뿌듯함이 내보인다. 코로나19 속에서도 격주로 모여 공부해온 서울원문화해설단. 창신동 코스 정인창 단장과 북촌 코스 박혜현 교도(정릉교당), 그리고 살림과 조율을 담당한 김시명 교도(금천교당)까지 모두 역사를 함께한 터줏대감이다.  

원불교100주년을 위해 모인 서울원문화해설단. 서문성 교무와 5개월 동안 매주 공부하고 수없이 코스를 밟아 해설사로 거듭났다. 이듬해 9월 발단식 이후 현재 순례를 이끄는 해설사는 약 10명. 코로나19 전까지 만 4년 동안 159개 교당 4천명의 교도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시간여행을 떠났다.  
 

성지 되찾으라며 금니 보낸 원로교무님
가장 많은 순례객들이 찾은 창신동 코스는 서울성적지의 양 날개 창신동과 돈암동을 잇는다. 동대문 부인병원에서 시작, 이화장과 낙산공원 전에 창신동경성출장소에서 머문다. 서울원문화해설단을 비롯,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창신동 집’이다. 육타원 이동진화 종사가 희사한 목조 초가에 소태산 대종사가 첫 법장을 두니 그곳이 바로 창신동 605번지였다. 총부를 제외한 지방에서 소태산이 가장 많은 법문을 설한 곳이며, 바로 여기서 성주법문도 나왔다. 

원기100년 서울교당에서 매입 후, 문턱이 닳도록 가장 많이 오간 이들도 서울원문화해설단이었다. 순례와 교육 때는 물론, 수리며 청소도 이들이 팔을 걷어부쳤다. 뭐라도 아낄 게 있을까 고민하다 난생처음 페인트칠도 해봤다.

“성지되찾기모금운동으로 금을 모아왔어요. 한번은 수도원 원로교무님들이 다녀가셨는데, 이공주 선진님 집터를 사는 데 보태라며 묵혀둔 금니까지 보내셨더라고요. 그 66분의 명단이 해설단에게 보물1호예요.”

오래된 집이라 여기저기 수리할 일이 생길 때면 이들은 떠올린다. 집이며 돈을 턱턱 희사해 부자인줄만 알았던 초기제자들, 그러나 실은 법횟날 밥 한끼 비용마저 아끼겠다고 국수며 죽으로 버텼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게 알뜰하게 모아 총부에 보내고 교화를 일으킨 것이다. 

“아직도 밝혀낼 설법과 예화가 많습니다. 창단 이후 매주 모이고, 코로나 상황에도 쉬지 않고 공부했던 이유지요. 어떤 장면도 술술 해설할 수 있고,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도록, 아는 것도 다시 챙깁니다.”

성지순례가 주는 앎 이상의 신성, 은혜, 감사 그리고 감동. 서울교화 100년까지 고작 2년, 원문화해설단의 요즘 관심사는 ‘어떻게 해야 감동을 더 줄 수 있을까’다. 평생 단 한 번일 수 있는 서울성적지순례, 이 몇 시간이 누군가에겐 앎이, 누군가에겐 눈물이, 혹 입교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교화자입니다. 우리의 말에 너무나 큰 기회가 달려있어요. 바라건대, 교육이나 해설, 강의해오신 분들이 많이 와주시면 좋겠어요. 성지의 기운을 지키고 스승님 말씀을 전하며 교화하는 해설단,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성적지 나아가 성지로 인정받는 그날까지
바람 한두 개를 덧붙인다. 교무들이 먼저 서울성적지순례의 맛을 봐달라는 것. 재작년 서울교구의 부임교무들 순례가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됐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순례를 해보면 도시 한복판 생생한 흔적들에 압도되는 것은 물론, 서울에 대한 이해와 애정도 달라진다. 이는 곧 교단이 지향하고 있는 서울 및 수도권교화의 실마리이자 희망도 될 것이다.

“순례 전에 답사를 한 교당들도 있었어요. 물론 받아들이는 정도나 감동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단합도 교화도 너무 잘 됐죠. 답사가 아니라도 좀 알고 오면 훨씬 좋습니다. 우리 교사를 담은 책은 읽기에도 일단 재미있고요, 산 역사이기에 생생하지요.”

교당이나 교구 그리고 교단의 관심을 당부하는 서울원문화해설단. 언젠가는 ‘성적지’에서 나아가 ‘성지’로 거듭날 그날을 기다리며 슬슬 고삐를 그러쥔다. 대각의 달 서울교구 청소년·청년들의 순례도 진행하는 한편 해설단 모집도 시작했다. 다시 발길 모이는 새 봄, 이제는 북촌과 창신동, 남산까지 3개 코스를 부단히 누빌 생각에 가슴이 뛴다. 

“단 두세 명이 신청해도 동행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들도 호젓하게 오세요. 더 많은 분들이 스승님들의 숨결을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설렘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내후년 서울교화 100년, 서울성적지로 순례오세요~.”

[2022년 4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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