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해 기자
장지해 기자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흐드러지던 벚꽃이 지고 나니 여기저기 올라오는 연둣빛 생기가 눈에 든다. 생기(生氣), 개인적으로 연둣빛은 살아있는 기운을 그대로 전하는 빛깔이라 여긴다. 더도 덜도 아닌 딱 요맘때 아주 짧은 시간만에 세상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그대로 전하는 색이기도 하다. 그 빛에 감탄하다 문득 ‘역동성’을 떠올린다. 힘차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성질, 그것이 ‘생기’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다.

대각의 달 4월을 맞아 교정원장 중앙일간지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11개 언론사가 함께한 기자간담회는 한 시간 반 남짓 진행됐다. 그런데 기자들은 간담회가 끝난 후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기사를 작성해 각 언론사로 송고했다. 원불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기자의 경우 배석한 담당 교무에게 바로 추가 질문을 진행하며 원고를 작성했다.

동석한 덕분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우리 원불교의 역동성’을 다시 떠올려본다. 한두 시간 만에 기사가 올라오는 속도의 시대. 시대가 빨라짐에 따라 보도 역시 역동성과 신속성이 묘미가 된 지 오래다. 빨라진 시대에서는 신속함과 역동성이 주요 가치가 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 또는 조직에 동일하게 요청된다. 

원불교 역시 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힘차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성질, 그 성질이 지금 우리 원불교에는 얼마나 작동되고 있을까. 

원불교의 역동성을 생각하다 보면, 다시 서울을 예로 들게 된다. 이번에도 느꼈지만 역시나 서울로 출장을 가면 덩달아 발걸음이 빨라지고 활력을 얻는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냥, 그곳의 환경이 그렇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건 고요하고 평화로움이 싫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환경이 가져다주는 신속함과 역동성의 차이, 그것이 분명 존재함에 대한 이야기다.

신속함과 역동성이 현시대의 요청 과제라면, 누구에게나 또 어떤 조직에나 요구되는 것이라면, 종교 역시 거기에 발맞춰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밝힌 ‘원불교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는 끝이 없다. 어떤 시대, 어떤 생활, 어떤 대중을 만나더라도 영원히 유효한 가르침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갓 100년을 넘겨 +7년째를 보내고 있는 원불교는 종교 역사로 보면 연둣빛 그 생기를 머금은 딱 요맘때의 계절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봄이든, 4월 대각의 달이든, 무엇을 핑계 삼아서라도 북적한 생기와 역동성을 가득 피워내기에 좋다. 우리가 가진 역동성을 세상에 어떻게 펼쳐 보일 것인가. 우리는 세상과 어떻게 신속히 소통해갈 것인가. 원불교의 창창함은 딱 이맘때, 이 계절의 빛과도 너무 잘 어울리지 않는가.

[2022년 4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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