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아라미 축제가 성공리에 마쳐졌다.

코로나 엔데믹의 시작점에 총부에서 오프라인 축제로 열렸다는 것에 의미가 컸다. 더구나 소태산의 깨달음을 미래세대에 초점을 맞춰 축제로 승화시켰기에 호응도 좋았다. 총부로 모여든 아이들의 북적이는 모습에 “이제 좀 사람 사는 것 같다”는 표현에는 지난 2년여 간 어쩔 수 없이 고립되어야 했던 피로감과 답답함이 잘 묻어난 것 같다.

오랜만에 총부 넓은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해맑은 웃음을 던지는 아이들의 풍경은 그대로 경전이 되고, 빠른 리듬을 따라가는 젊은 교무의 신나는 몸짓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그래서 이번 아라미 축제는 ‘다같이 다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도 잘 일깨워준 듯하다. 

특히 4월을 기점으로 전국 교당들 역시 법회의 문을 활짝 열기위해 설렘 가득 분주하다. 그러기에 이번 총부에서 열린 축제는 마치 ‘교화를 목표로 모두가 달릴 준비가 된 마라톤주자’들을 독려하는 신호탄이 된 듯, 상징성도 가진다. 당분간 총부가 먼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일을 선도해간다면 일선 교당교화에도 변화의 지표가 되지 않을까.

소태산 당대는 지역민들과 연대감이 강한 역동적 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불법연구회(지금의 총부) 입구에는 원숭이와 다람쥐 등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키우며 마치 축소판 동물원 풍경을 연출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볼거리가 부족했던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또 불법연구회 서쪽 언덕에 큼지막하게 지어진 대각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이야기에는 부러움과 경이로움이 가득했다. 

이뿐만 아니다. 이제는 제법 먼 시간여행이 되었지만, 1970년대를 산 익산지역 아이들이라면 한번쯤은 소풍 삼아 총부를 방문해 성탑 주위에서 뛰놀던 이야기를 들춰낸다. 즉 지역밀착형 총부기능이 가동됐고, 공공성에 바탕해 총부가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총부는 어떨까? 익산 지역민 다수가 익산에 본부를 둔 원불교 총부를 모르고, 총부를 출입이 금지된 구역으로 오해하는 일도 다반사다. 또는 원불교 사람들조차도 ‘총부는 총부 사람들만의 것’이라는 자조를 쏟아낸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를 조장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새 ‘우리끼리’ 만의 의식이 이런 부정적 풍토를 만든 듯해 안타깝다.  

지금 전국 지자체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축제를 열어 유혹한다. 제 발로 찾아오기를 바라는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아름답고 고즈넉한 풍경을 우리끼리만 누리고 있으면 고립밖에 답이 없다. 

종교도 즐거울 수 있다. 소태산도 이미 그 시대에 깔깔대소회를 열어 웃음 가득 행복을 나누지 않았던가. 이제는 종교가 축제를 만나 세상을 교화하자. ‘풍류로서 세상을 건지리라.’ 지금이 그런 시대다.

[2022년 4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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