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범 교도
박성범 교도

[원불교신문=박성범 교도] 실내 마스크를 제외한 모든 거리두기 방역지침이 해제되었다. 마스크로 가렸던 살이 붙은 얼굴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마스크를 벗어던지면 무기력과 우울, 포기의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은 기대에 마음이 들뜬다.

나는 코로나19를 중국 출장지에서 처음 만났다. 2020년 1월 중국 산시성 시안이라는 도시에 3개월 일정으로 출장을 떠났다. 입국 후 일주일 동안 우한의 공식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가고, 시안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중국정부의 이동 제한이 시작됐다. 중국의 명절인 춘절 연휴를 연장하고 귀성객의 복귀를 통제했다. 상점은 문을 닫고 아파트, 호텔, 회사의 출입구마다 공안이 배치돼 열을 측정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한 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는데 코로나19 위험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없었다.

회사의 관리자에게 메일을 썼다. 출장지에서의 일은 마무리하지 못하였지만 출장자 모두의 국내 복귀를 희망한다는 내용이었다. 회사는 10명 남짓한 출장자의 복귀 여부를 다수결에 맡겼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10명 중 8명이 중국에 남겠다고 했다. 나의 상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숙한 내가 분위기에 휩쓸려 영웅놀이를 하다 뒤통수를 맞은 거라고 했다. 철이 좀 들어야겠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혼자라도 돌아가겠다고 마음먹고 귀국 항공편을 준비하였으나, 한국에 감염자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면서 비행기가 취소되었다.
 

편안할 때 위태할 일을 
잊지 않는 성현의 지혜를 
새겨 살아간다면 
다시 기회는 온다.

무기력은 포기의 손쉬운 핑계가 된다. 봉쇄 중에도 나를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통행증을 발급받고 출근을 할 수 있었는데, 귀국 비행기가 취소된 무렵부터는 무단으로 출근을 하지 않았다. 평생 입에 대본 적 없던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술을 어떻게든 구해서 먹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서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과 멱살잡이도 해보았다. 한 달 만에 귀국하였으나, 그 무렵 한국에도 코로나19가 상륙했다.

이후 2년간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무기력으로 어지간한 것은 포기했고, 운동을 하거나 교당에 나가는 것을 코로나를 핑계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인내와 희생, 포기로 얻어낸 조금의 여유로 몇 가지 지켜낸 것들도 있다. 퇴사하려던 마음을 돌려 회사 다닐 이유를 찾기로 했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대구 의료진에게 구호물품을 보내고, 정기후원하던 구호단체의 후원액을 늘렸다. 담배는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중국에서의 태업을 반성하고, 거리두기로 줄어든 술자리만큼 일에 열정을 쏟다 보니 진급해서 어느새 과장이 되었다.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스탠퍼드대학 스콧 세이건 교수의 유명한 투자 격언이다. 다음에 일어날 ‘일어나지 않은 일’은 또 많은 것을 포기하게 하겠지만, 일 당하면 바보인 듯 삼가 행하고, 편안할 때 위태할 일을 잊지 않는 성현의 지혜를 새겨 살아간다면 다시 기회는 온다. 우선 교당을 다시 나가기로 했다.

/신림교당

[2022년 5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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