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어떤 선물을,
어떤 마음으로, 어떤 포장지에 싸서
어떻게 전달할지 생각해봅시다.

우정화 교무
우정화 교무

[원불교신문=우정화 교무] 약 2년 1개월만에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다시 일상으로’라는 가슴 벅찬 신문 헤드라인을 며칠 전 보았습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일상 속 실천 방역 체계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불안했던 이 시기를 그래도 무사히 잘 넘기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와 의료진들, 그 외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또한 어려웠던 시기를 소태산 대종사님께 길을 물으며 한걸음 한걸음 걸었던 우리 교도님들과 교무님께 감사합니다.

교도님들도 낯선 환경 속에서 많이 어려우셨지요? 한 주도 빠짐없이 마음 챙겨 교당에 나오다가 집에서 영상으로 법회를 보고, 줌(ZOOM)이라는 것을 스마트폰에 설치하여 교화단회를 했습니다. 그 낯선 상황에도 교전 공부하며, 기도하며, 아침 좌선과 저녁 염불을 빠짐없이 챙겨가며 공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당 법회만 보다가 유튜브를 통해 이웃교당 법회도 보고, 설교도 들으셨지요. 어떤 교도님이 제게 그러시더군요. “교무님, 우리도 많이 바빴어요. 우리 교당 법회도 봐야지, 다른 교당 법회 설법도 듣고, 이웃 종교 설법도 듣고…. 우리도 공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러면서 “코로나19 기간 동안 귀와 눈은 부처가 되었다”며 웃으셨습니다. 

또 우리 교무님들은 어떠셨습니까? 부족한 설교지만 코로나19 이전에는 법회에서 교도님들과 눈을 맞추며 서로 기운을 건네며 법의 훈련을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텅빈 법당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며 설교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셨나요? 누군가는 “교무니까 당연히 교화하고 설교해야지”라고 할지 모르지만, 소통의 대상이 없이 홀로 감정이입을 하며 설교를 해야 하는 황당함과 무엇보다 설교를 듣는 교도님들의 반응을 알 수 없음은 답답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하고 더 연마하여 영상시대에 더욱 요구되는 교법성, 정직성, 성실성, 타당성의 설교를 준비하며 교도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낯설지만 이 또한 법신불 사은님께서 주신 은혜임을 알기에, 우리들이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인과임을 알기에 슬기롭게 잘 극복해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손을 올려 자신의 어깨를 토닥토닥해보세요. ‘나에게 고맙다.’

얼마 전 제목에 끌려 선택한 책이 있습니다. 전승환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에게 건네는 인사 『나에게 고맙다』입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딱 맞는 제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나를 위로하고, 나를 응원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선택하고 있을까요?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 중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한 설문 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8명 이상이 자신을 위한 선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한 금액에 관계없이 자신을 위한 선물은 사치가 아니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교도님들은 어떠신가요? 자신을 위한 선물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교당에서 ‘아빠와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저녁에 30대~40대 아버지들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습니다. 가족 말고 자신에게 했던 선물이나 시간이 있냐고 물으니, 어느 분이 “일주일에 한번 설렁탕을 먹습니다. 제가 좋아하거든요. 다른 음식은 비싸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분은 “걷기를 합니다. 그 시간은 오롯하게 나의 시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모든 대답의 공통점은 ‘자신을 위한 것은 돈이 덜드는 것, 시간이 좀 덜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한 분이 “원불교입니다. 아마 원불교 교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됩니다. 원불교는 나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법회는 꼭 참석하려고 합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정산종사께서는 권도편 13장에서 “내 절 부처를 내가 잘 위하여야 남이 위한다는 말이 있나니, 자신에게 갊아있는 부처를 발견하여 정성 들여 불공하라. 불공에는 자기 불공과 상대 불공이 있는 바, 이 두 가지를 쌍전하여야 하지마는 주종을 말하자면 자기 불공이 근본이 되나니, 각자의 마음공부를 먼저 하는 것은 곧 불공하는 공식을 배우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값비싼 물건을 나에게 주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자기 불공은 결국 영생을 통해 드러나게 되고, 스승님 말씀처럼 자기 불공이 바로 불공하는 공식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 불공에도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인연은 상생의 선연으로 거듭나게 되고, 나에겐 복과 지혜가 충만해집니다.

원불교 교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마음공부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임을 알고 있습니다. 영생을 통해 선물을 받게 되니 유통기한 없는 가성비가 최고인 선물임이 분명합니다. 내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마음공부’, ‘자기불공’입니다. 불공은 제일 귀한 부처님께 공을 들이는 것이고, 자신에게 갊아있는 부처를 발견하여 정성 들이는 게 마음공부입니다. 『한울안 한이치』에 “실지 불공은 천지 만물의 양계에 하는 것이요, 진리 불공은 허공 법계의 음계에 하는 것이니 이를 아울러야 처처불상 사사불공이 원만히 되리라” 했습니다. 나를 두고 본다면 보이는 나의 모습에 불공하는 것은 실지 불공이고, 보이지 않는 나의 모습에 불공하는 것은 진리 불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기가 건강을 챙기고 자력을 쌓아가고 자신의 실력을 양성하는 것은 나에게 실지 불공이고, 마음공부를 통해 실력을 양성하는 것, 근원을 찾아 기도하는 것은 나에게 진리 불공입니다. 자신을 위해 수양하고 연구하고 취사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바로 불공의 기초가 되고, 그 실력은 우주만물 허공법계를 모두 부처로 보는 처처불상 사사불공으로 확대되어 갑니다. 여기서 자기 불공은 이기적 자기가 아닙니다. 내가 주인이 되고 먼저 실행하려는 마음입니다. 

나에게 주는 선물인 ‘자기 불공’을 정성스럽게 합시다. 선물은 내용물도 중요하지만 주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내가 나에게 어떤 선물을, 어떤 마음으로, 어떤 포장지에 싸서 어떻게 전달할지 생각해봅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는 죽는 날까지 나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돕는 자는 하늘도 돕는다고 했습니다. 대산종사께서는 “소태산 대종사께서 앞으로 복과 혜를 멀리 밖에서 구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서 구하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소태산 대종사의 위대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스스로에게 고맙다고 다독이며, 불공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은 나이며, 나와 이웃은 둘이 아니어서 ‘처처불상 사사불공’ 하게 됨을 말입니다.

/원불교 서울교구사무국

[2022년 5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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