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원로교무
김종천 원로교무

[원불교신문=김종천 원로교무] 인간의 뇌는 항상 ‘방법’만을 찾는다. ‘수영하는 법’, ‘잘 사는 법’ 등이다. 특히 타인과의 공존이 어려워지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또 개인의 힘만으로는 각자도생이 어렵고 사회의 불안감이 커질 때, 이때다 하고 자칭 멘토 또는 선지자라며, 힐링 파워가 있다고 아는 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관대한 공약을 내세우며 선동으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 강화한 아돌프 히틀러 같은 선동 정치가가 대표적이다. 우리 주위에는 점잖은 유니폼을 입은 ‘작은 히틀러’들이 생각보다 많다.

인간은 자기가 느끼고 경험한 일로 정리된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것은 말일 수도 행동일 수도 또 그 말과 행동을 시스템화한 표현일수도 있다. 여기서의 시스템은 ‘제도’라기보다는 ‘체계’를 의미한다. 시스템을 기획한 기획자의 생각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한다. 세계교화를 기획한 사람은 코앞에 있는 ‘물고기’만 잡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물고기’를 잡기 위해 시선을 멀리 둔다. 기획된 디자인으로 나타난 발랄한 아이디어를 보게 될 때 사람들은 그 아이디어에 감동하고 즐기게 된다. 기획자로서는 남들이 고민하지 않는 것을 고민해야 하고, 그 고민을 시대에 맞는 참신한 방법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진리와 합일하여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산 넘어 동네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본능이 있다. 고타마 붓다가 보드가야에서 정각을 얻은 후 그 자증의 소식을 알려주고 싶어서 불원천리하고 녹야원(사르나트)으로 걸어간 이유도 그런 것이다. 그 동네의 상황을 언어와 문자를 통해서 설명하니,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신기한 내용들이라 그가 한 말과 글자에 매달리게 된다. 

그가 한 말과 글에 밑줄을 꾹꾹 긋는 병폐가 생기기 시작하면, 그는 또 아니다 싶어 ‘염화시중’의 이야기처럼 불판을 한 번 뒤집고 분위기를 일신시키려고 노력한다.

언어와 문자의 한계를 자각하면서 처음부터 주의를 주고 보물섬 찾기라는 ‘게임’을 시작한 것은 노자다. 그는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요, 이름을 이름이라고 하면 이름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도 ‘일원상 서원문’ 벽두에서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라고 못을 박고 시작했으니, 그다음 문장들은 어떻게 보면 읽으나 마나 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진리라는 것은 우리들의 언어로서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해놓고 ‘춤마당’을 벌였으니, 작두 위에서 추는 선무당을 보는 듯 아찔하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자에 매달리는 방식 또한 민족과 국가마다 그 문화의 차이 때문에 각양각색이다. 어떤 곳은 진리를 ‘도’라하고, 어떤 곳에서는 ‘야웨’(‘이름이 없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신’ 또는 ‘알라’, ‘브라흐만’ 등 여러 가지로 표현했다.

언어와 문자의 지평선을 뛰어넘어, 다른 세계를 보았던 사람들의 내적인 체험과 그 체험의 외적인 표현들이, 질서 있게 정리되고 사회적으로 확장되어 ‘종교’의 토대가 형성된다. 소위 종교라는 것은 그것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내적 체험에 대한 외적인 표현의 집합체다. 그런 경험과 증득의 표현들을 언어화한 것이 경전이다. 그리고 그런 표현과 상징들에 대해 공감하고 동의를 하면서 유지 발전을 서약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모든 종교나 조직은 처음에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운동체적 성격으로 출발하지만, 효율성을 높이고 소기의 목적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된다. 종교의 제도화는 창시자의 카리스마가 일회적 종교운동으로 끝나는가, 아니면 그 권위의 제도화가 순조롭게 진행되는가에 따라 달려 있다. 종교학자 브루스 링컨은 “종교에는 내적인 체험 혹은 신앙과 관련한 담론이 있고, 의례와 관련한 실천 행위가 있고, 담론과 행위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있으며, 또 그 공동체를 제어하는 제도가 있다”고 했다.

세상이 얽힌 실타래처럼 풀기 어렵고 개인의 힘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힘들다고 생각할 때 불안감은 커진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항상 ‘방법’을 찾는다. 서점에서 ‘~하는 방법’으로 이름지어진 책이 잘 팔리는 이유 중 하나다. 인간은 그런 불안감에서 시스템을 만들고 그곳에 안주하려고 한다.

집단 또는 공동체가 이루어지면 그 집단 안에 계급과 질서를 세운다. 곧 서열과 위계질서를 만들고, 그 체계 안에서 구성원들은 저마다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며 그 위치에 걸맞는 권력을 확보한다. 그 권력은 자기가 갖는 지위에 맞는 기능으로 표출된다. 위계질서를 만든 인간들은 그 구조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또 동시에 그 질서에 순응하며 복종하려는 본능도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저마다 위치를 공인받고 즐기게 되면 자연히 긴장이 풀어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된다.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2년 5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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