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십년쯤 됐나. 철원교당 마루에 앉아있던 오후, 우당탕탕 초등학생들이 들이닥쳤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냅다 이름 하나를 외쳤다. “삼목아~ 우리 왔어! 천천히 뛰어와~ 다리 아파~.”

마당 저쪽에서 한 강아지가 겅중겅중 나타났다. 걸음걸이가 낯설다 싶었더니 다리가 세 개다. 날때부터 세 다리라 이름도 삼목이. 교당엔 개가 더 있었지만, 아이들은 삼목이를 유독 아꼈다. 물론 삼목이 쪽에서도 아이들에게 유독 마음을 줬으리라. 그때 생각했다. 다리 셋인 개와 아이들이 서로를 아끼는 곳, 이 장면 하나로 여기의 체온을 알겠다. 이런 곳이 교화 안 될 리 있나. ‘애’와 ‘개’가 행복한 곳인데.

오덕훈련원 진돗개 금동이는 사람을 잘 따른다. 얼마나 잘 따르냐면, 일단 누구라도 시야에 들어오면 스나이퍼마냥 주시한다. 그러다 눈 마주치는 순간, 꼬리는 붕붕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된다. 방향이라도 틀거나 한발짝 움찔하면 오두방정 기쁨의 댄스다. 금동이 눈길과 웃음을 본 누구라도, ‘이 개는 사랑을 참 많이 받는구나’, ‘여기도 참 좋은 곳이겠다’를 생각하지 싶다. 

해운대 여행기 블로그에 종종 등장하는 원돌이. 버젓이 다니길래 떠돌인가 싶었더니 원불교 개였단다. 교당 사진은 안올라와도 개 사진은 올라온다. ‘해운대에도 원불교가 있구나’ ‘우리 동네에도 있던데!’ 일깨우는 원돌이야말로 최고의 교화자 아닌가.

농식품부의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2020)가 발표한 반려동물 양육비율은 27.7%, 1,500만 명이 동물과 같이 산다. 자연스레 우리 사회의 동물 감수성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장례식, 유치원, 뷰티샵, 펜션 등이 호황이며, TV에서도 애보다 개를 더 많이 다룬다.  

동물이 있는지, 어떻게 대하는지, 얼마나 행복한지 등이 상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된다. 안락사 권유받은 유기견을 17번 수술시켜 살려냈다는 일화는 인간미를 얹어줬다. 학교의 아기고양이가 다친 채 끈끈이에 뒹굴어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집에 안고가 결국 한식구가 됐다는 교무 얘기도 이에 못지않다. 유기견이나 길고양이를 먹이거나 거둔 이야기, 가족처럼 함께 지내는 삶에서 나오는 법문이며 공부거리도 얼마나 많은가.  

다시 교당과 훈련원이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달라진 세상, 우리의 이야기를 준비하면 어떨까. 동물에 대한 법문이나 예화를 짚어보고 유기·입양 및 동물권을 교리적으로 풀어보자. 특별천도재에 심심찮게 반려동물 이름이 올라오는 우리, 어디보다도 빠르게 동물들을 위한 법회를 열어봐도 좋겠다. 혹시 모르지 않나, ‘천하제일 원불교 반려동물대회’에 유무념 지키는 개, 염불하는 고양이가 위풍당당 나타날지.

[2022년 5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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