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장애인 생활재활 공로 보건복지부장관상 표창
같이 자고 끝까지 존중하며 기저귀 뗀 기적
정년퇴직 하고도 자원봉사자로 현장찾아 활동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부안군 주산면 논길 한복판서 경사가 났다. 사회복지법인 한울안의 둥근마음보금자리에 보건복지부장관상 수상자가 나온 것. 

원기103년 입사, 불과 4년만에 큰 표창을 받은 주인공은 정현자 생활재활팀장(법명 현정·부안교당). 그는 이곳에 살아가는 21명의 여성장애인들이 원만한 일상생활을 하도록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내가 대체 뭘 했길래 상을 받았나 생각해보니까요, 저는 지기 싫었어요. 장애한테 지기 싫었고요, 포기한테 지기 너무 싫었어요.” 지기 싫었기에 질 수 없었다던 정 팀장. 그가 세상을 감동시킨 것은 세월보다 깊이였고 지극한 은혜였다. 

밤낮으로 정신연령 2~3세의 10대~60대 장애인을 만나는 것이 어찌 쉬울까. 밥 먹는 일, 화장실 가는 일, 자기 몸 씻는 일조차 일일이 손이 가야하는 장애인들은 흔히 정신 뿐 아니라 육체적 아픔도 동반하기 일쑤다. 태어날때부터 맡겨지거나 잦은 전원으로 늘 버림받을까 두려운 장애인들. 상대를 이유없이 미워하기도 하고, 보란듯이 말썽을 부리기도 한다. 제 부모, 제 자식이어도 쉽지 않은 장애인복지 최전선의 무아봉공, 그 곳에서도 정팀장의 일화는 기적이라 불린다.
 

“현남씨 아이고 너무 잘했어요”
윤현남 씨(가명)는 어릴적 보육원에 있다가 보육원이 폐쇄된 후 다른 시설을 거쳐 둥근마음보금자리에 입소했다. 사랑과 응원으로 재활하기를 반년, 이 정도면 대부분 기저귀를 떼는데 현남 씨는 요지부동이었다.

“현남씨가 언어 구사가 좀 되니 다들 기대를 했죠. 그런데 늘 타이밍을 못맞추고, 오래 앉혀놔도 안되는거예요. 아마 배뇨감을 느끼는 데 문제가 있나보다 생각했죠.”

이쯤이면 포기할 법도 하련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왜 안될까, 어떡하면 될까, 곰곰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 사람을 이해하자’였다.

“같이 자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직이면 같이 자고, 아닐 때는 자기 전 무릎꿇고 안은 채 토닥토닥 사랑한다고 인사한 후 퇴근했어요. 수직관계를 벗어나 눈높이를 맞추고 싶었습니다.”

현장의 전문가들이 염려하기도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당신의 말을 듣고 존중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전략도 바꿨다. 

시간이 되면 변기에 앉혀놓고 소변을 보겠냐고 물었다. “아니요”라고 하면 “알겠어요. 그럼 다음에 다시 해봐요”라며 지체없이 바지를 추어올렸다. 그렇게 몇 개월,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쪼로록 소리가 났다.

“현남씨!! 아이고 너무 잘했어요!!”

그 순간 어찌나 세게 끌어안았는지 “목 아파요 놔주세요”라던 현남씨. 그래도 얼굴은 싱글벙글이었다. 허나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기저귀를 완전히 떼고 배변 의지를 온전히 전할 때까지 반년이 더 걸렸다. 그동안 젖은 속옷 갈아입히기며 바닥 걸레질이 몇 번이던가. 치밀어 오는 화를 누르며 남몰래 울기도 부지기수였다.


엄마를 모시는 마음으로 
“아픈 엄마를 요양병원에서 뵙고 올때마다 마음이 아렸어요. 엄마에 대한 마음을 더 어려운 분들에게 돌리자 싶어 사회복지학위를 땄습니다.”

늦깎이로 현장에 서게 된 그에게 조법현 교무(둥근마음보금자리 원장)는 큰 힘이 되어줬다. 왜 장애를 안고 태어났을까, 화가 나면 어떡해야할까, 탈진한 마음은 어떻게 채워야할까 등의 질문에 조 교무는 늘 교법으로 답해주었다.

“우리 딸이 저더러 엄마 성격은 호구라고 하거든요. 아닌게 아니라 싫은 소리 못하고, 부딪히는 것도 싫어해요. 그러다 보니 어딜 가도 주눅들고 긴장했죠. 근데 여기서는 걸림 없이 내 마음대로 해도 은혜가 되더라고요. 원불교 시설이었기에 그 이치와 감사를 알게 됐죠.”

김현희 씨(가명)도 그에게는 공부 대상이요 은혜거리였다. 늘 침을 흘리는 터라 1m 앞에만 가도 침냄새가 진동하는 현희씨. 싫은 소리 하는 사람에겐 침을 모아 뱉기도 하고, 한번 시작하면 직원을 몇시간이고 들들 볶았다.

“방문만 열어도 침냄새가 심하죠. 근데 저는 이해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시간되면 같이 자고 침흘린 반찬도 ‘제가 먹어도 돼요?’ 하며 먹었어요. 그랬더니 현희씨 눈빛이 달라지고 표정이 달라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다음 생에 다시 찾기 쉽도록
지난해 12월 정년퇴직, 허나 그는 자원봉사자로 계속 둥근마음보금자리에 온다. 잠시 쉬고 다시 온 첫 날, 현남씨는 그의 손을 잡고 “오줌이 나올 것 같아요”라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게 가장 큰 반가움의 표현이었음을, 그는 아직도 뭉클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를 알아주는 곳이 있고 교무님을 비롯한 직원들이 있어서,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 딸이자 동생, 언니, 엄마가 여기 있잖아요. 힘 닿는 데까지 현장에서 함께 하고 싶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기사에 장애인들의 가명을 쓰기 위해 의견을 물었다. 곰곰 생각하던 그가 건넨 대답.

“둘 다 ‘현’자 넣어서 지어주세요. 제 호적명이 현자고 법명도 현정이잖아요. 신문에라도 ‘현’자 넣은 이름이면 다음 생에 다시 찾기 쉬울 것 같아요. 혹시 모르죠, 자매로 태어날지. 아니면 ‘어? 내 이름과 같은 글자가 있네? 우리 친하게 지내자!’ 할 수 있잖아요.”
다시 찾아 무엇을 하고 싶은걸까.

“카페에서 마주 보고 앉아 수다 떨고 싶어요. 그땐 우리 눈도 맞추고 속이야기도 마음껏 하겠죠. 그리고 우린 아주 자유로울 거예요. …”

말끝을 흐린 그의 눈에 물기가 어려있다. 이 마음은 본디 어디서 왔길래 이리도 훈훈한가. 낮고 어두웠던 그들을 이 마음은 어찌 이토록 끌어안았나. 

여름의 초입, 부안의 논에는 모내기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한낮의 볕에 그 맑고 따뜻한 마음도 함께 반짝거렸다.

[2022년 5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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