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님, 제가 어제 타로카드로 운세를 봤는데요. 우리 프로그램 이번에 대박 날 거래요.”

“근데 왜 타로카드 같은 데에 돈을 쓰는 거예요?”

얼마 전, 프로그램 회의 중에 나눈 동료와의 대화이다. 평소의 나였더라면 그의 동문서답에 참지 못하고 받아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답답해하거나 반문하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역시! 피디님은 MBTI가 T인 분이시네요.”

그저 지나가는 유행인 줄 알았던 MBTI(Myers-Briggs-Type Indicator,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테스트 열풍이 여전하다. 이제는 혈액형 대신 MBTI 테스트 결과인 알파벳 4글자 조합을 묻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MBTI를 모르면 자기소개가 완성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MBTI 테스트에 따르면, 나는 ENFP형 인간이다. ‘재기발랄한 활동가’라고 한다. 설명을 들여다보니 얼추 나와 비슷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많고 공감 능력이 높으며, 무언가에 쉽게 빠져드는 만큼 변덕도 심하다는 설명 같은 것들. ENFP 중 F가 ‘Feeling(감정)’, ‘공감형’ 인간을 뜻하는 알파벳이다. F의 반대는 T로 ‘Thinking(생각)’, 즉 ‘사고형’이라고 한다. 

대화로 다시 돌아가 보자. 사은님이 보우하사 프로그램이 잘 될 거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던 F형 인간은 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 앉자마자 대화를 시작한다. 이때, T형 인간은 생각한다. ‘대체 이 작가는 왜 타로카드 같은 불분명한 것에 돈을 쓰는 걸까?’ 진심으로 궁금하기에 질문한다. 누구도 잘못하거나 이상한 사람은 없다. 그저 F형 인간과 T형 인간이 존재할 뿐이다.

늘 감정이 생각보다 한 발짝쯤 더 앞서는 나는 사람 관계를 참으로 어려워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보면 최선을 다해 분별심을 발동시켰고, 결국 제풀에 지쳐 마음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나에게 MBTI는 개개인을 그 모습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MBTI의 순기능이다. 

MBTI가 제시하는 척도에 따라 사람을 이해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 당신은 이런 사람이구나.’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그 자체로 존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의 폭도 넓어지고 그의 입장을 돌아보게 되는 일 역시 쉬워졌다. 하여 요즘엔 가슴에 가장 많이 새기는 말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이다. 일찍이 소태산 대종사가 일러준 대인접물의 덕목이다. MBTI로 말미암아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나, 실은 늘 배워온 마음공부법과 다름이 없다. 마음 힘든 데에 해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만나는 사람이 다 부처요, 순간순간 곳곳이 불상이라던 말씀을 떠올린다. 재색명리 쫓기에 바빠 나를 반조하지 못하고 분별심에 사로잡혀 남을 평가하기 바빴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MBTI가 과학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진정한 ‘과학’은 마음공부에 있다. 이제부턴 마음공부에 과하게 몰입해보기로 한다.

/고창교당

[2022년 5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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