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형 교무
조태형 교무

[원불교신문=조태형 교무] 불교라고 하면 흔히 인과라든지 윤회와 같은 것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업, 또는 업보라는 단어도 빠질 수가 없다. 그러나 정작 이 업(業, Karma)이라고 하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추상적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업은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여러 가지 행위에 의해 이뤄지는 결과라 볼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되는 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자체에 힘이 쌓여 업력으로써 우리가 보고 듣고 판단하는 가운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작용하게 된다. 깨닫지 못한 중생들은 이 업력에 끌려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삶에 괴로움이 다할 날이 없으나,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나 성자들은 마음의 힘을 갖춰 이 업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에 죄와 복을 자유로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 업이라는 것은 곧 습관을 뜻한다. 습관이라는 것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반복해서 여러 번 계속하는 가운데 형성된다. 그런데 이렇게 습관이 되고 보면 그때부터는 습관 자체에 관성이 생겨서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습관에 따라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내가 만든 습관에 끌려서 살아가는 것을 업력에 끌려서 살아간다고 한다.

그것이 좋은 습관일 경우에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좋은 습관은 형성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이 많이 드는 반면, 안좋은 습관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쉽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일반적인 경우 습관에 끌려가면 득보다 실이 많아 그 삶에 괴로움이 다할 날이 없게 된다.

보통 많은 사람들은 의사 결정을 할 때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내가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방향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렇게 호오가부(好惡可否)를 먼저 생각하면 결국 내가 그동안 지어온 업력에 끌려가는 것이 되고 만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처음으로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폼이 얼마나 엉성했던지 주위 사람들 모두 ‘너처럼 운동 신경이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시간낭비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생은 그른 것 같았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 그리고 지금 시작하면 다음 생에는 좀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 꾸준히 정성을 기울였더니, 4학년이 되었을 무렵에는 운동신경을 타고 났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다음 생까지 갈 것도 없이 불과 4년 만에 업력이 바뀐 것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누에는 뽕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낱 미물에게는 그 자신에게 업력을 벗어날 힘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그렇지 않다. 업력을 벗어나 죄복을 자유로 할 수 있는 권능이 이미 나에게 주어져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발현하지 못하고 나의 앞길을 스스로 막아버린다면 얼마나 통탄해 마지 않을 일인가.

그러니 잠시 마음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겠다. 나는 지금 습관에 끌려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시비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역량을 뛰어넘는 삶을 걸어가고 있는가?

/미국 산호세 개척

[2022년 6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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