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준위로 19년째 군법회 이끌어
첫째 중사 둘째 하사 삼부자 군인 가족
오늘 법회 출석 아내, 아들 둘, 병사 하나 이상 넷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그의 전투화에는 연병장 흙먼지보다 법복 자락이 자주 스친다. 현역 준위로 군부대 안 법회를 이끌어온 조성원 원무(호적명 두형, 이천교당). 그는 19년째 군종 원무를 맡아 군교화의 활불로 살아왔다. 

그를 설명하는 데 따라붙는 단어 ‘최연소’. 18세에 군인이 된 그가 부사관 중 3% 정도만 된다는 준위를 단 것은 28세. 드물게 더 어린 경우도 있지만 거의 최연소에 속한다. 이후 34세에 최연소 원무가 되었으며, 40대에 교도회장, 50세에 법호를 받은 것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교무가 오든 안 오든 병사가 몇이든
“원기89년(2004) 원무사령을 받고 당시 부대에 법회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소식이 없는 거예요. 원무로서 첫 도전이라 잠도 잘 못 잤죠. 그런데 좌산종법사님이 꿈에 나타나셨어요. 바로 다음 날 지휘관이 구두 승인을 해주더라고요. ‘알아보니 원불교가 참 좋은 종교더라’면서요.”

당시 군법회는 전국을 탈탈 털어도 일곱 곳밖에 안 됐다. 군종도 아닌 데다 듣도보도 못한 사람이 더 많았던 군대 안의 원불교. 그리 어렵게 법회 개설을 허락받은 조 원무는 금싸라기 같은 병사 몇 명을 그야말로 ‘모시고’ 봉불했다.

그 어렵다는 준위가 돼서 가장 좋은 점을 “승진이 없으니 좀 편안하게 군교화할 수 있어서”라고 말하는 천상 교화자. 한결같은 그의 바람은 교화 홀씨를 여기저기 날려 보냈다. 이천을 비롯, 광주, 양평, 태안 등 인연 닿는 대로 일원상을 걸고 법회를 봐온 세월. 군종이 되든 안 되든 교무가 오든 안 오든 병사가 몇이든 상관없었다. 

농부가 밭을 탓하랴. 다만 그는 씨앗 하나라도 귀하게 받들었다. 단 한 명의 병사를 놓고 법회를 보기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넷이었다. 그의 아내, 큰아들, 작은아들, 그리고 병사까지 넷.

“한 명이 백 명입니다. 법회 한번이 중요한 거거든요. 부대에 법회 개설 요청할 때 보고서를 써요. 여기에 ‘어디서 몇 개의 법회를 보고 있다’ 이게 근거가 됩니다. 병사 한 명이 그 어려운 ‘1’이 되어준 거예요.” 
 

“조 준위, 원불교가 신문에 났어”
부대에서 그의 이름 석 자는 곧 ‘원불교’로 통한다. 오죽하면 16년 전 군종 진입 소식도 교단이 아닌 군인 동료에게서 알게 됐다. “원불교가 신문에 났어!”라며 걸려온 전화, 그 순간을 돌아보는 조 원무.

“의외로 덤덤하더라고요. 저는 2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종법사님의 경륜과 혜안, 여기에 전 교단이 한마음 되니 그리 빨리 되더라고요. 리더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배웠습니다.” 말끝에 물기가 어리는 조성원 원무. 군종 진입을 외치며 재가출가 교도들이 길 위에 섰던 겨울을 떠올린다. 현역이기에 함께 할 수 없었던 아쉬움, 울기는 그때 많이 울었다. 그렇게 한 달여, 원불교는 군종의 높은 문턱을 넘었다. 원기92년(2007)이었다.

“군종교화 이제 16년째입니다. 군종장교 전체 300여 명 중 원불교 장교 3명입니다. 1%도 안 되죠. 그런데도 이미 많이 달라졌어요. 앞으로 훨씬 더 변할 거고요.”

한번 씨가 떨어지면 절로 계속 꽃피우는 군교화. 그는 그 강한 생명력을 봐왔다. 그의 이동이나 교당 사정으로 법회가 끊겨도, 원불교 종교활동은 계속 지켜지곤 했다. 그나 교무는 없지만, 원불교에 한번 마음을 준 병사들은 시간을 지켜 놀기도 하고 교전도 뒤적인다.

“청년들이 법회 기다리는 곳이 바로 군대입니다. 어찌 마음이 안 급하겠어요. 어떻게든 인근 교당과 연결하거나 저라도 들어가죠.”

원무 19년 동안 웬만한 교무만큼 법회를 봐왔던 조성원 원무. 가장 기쁠 때야 법회가 개설될 때지만, 인근 교당이 여건이 안 될 때 못내 속상하다. 

“군교화는 콩나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물 줘봐야 밑으로 죽죽 빠져버리는 것 같지요. 그런데 어느새 콩나물이 쑤욱 자라있거든요. 20대에 원불교와 연을 맺었던 병사들이 20~30년이면 우리 사회의 주인이 됩니다. 그러니 군교화는 50년 후 100년 후를 보고 투자해야죠.”
 

19년 째 군교화 현장의 활불로 살아온 조성원 군종 원무의 군종활동 자료집.
19년 째 군교화 현장의 활불로 살아온 조성원 군종 원무의 군종활동 자료집.

머리가 덜 굳었을 때, 가장 힘들 때
이제까지 그가 연원한 입교자는 105명. 이생에 100명을 목표했는데 이미 넘어버렸다. 100명은 군인, 나머지 5명도 군가족이다. “민간인 교화 10년 20년 해도 100명 어렵죠. 하지만 군교화는 가능합니다. 스쳐 지나가더라도 인연 맺을 수 있어요. 20대 초반, 아직 머리가 덜 굳었을 때 그리고 가장 힘들 때 원불교가 다가갈 수 있습니다. 교화를 통해 군대와 우리 사회에 이바지할 수도 있고요.”

법회가 없던 동안에도 수시로 군종병을 찾아가거나 위문을 이어왔던 그. 슬슬 다시 법회를 보러 1시간 넘는 거리를 달릴 참이다. 아내 정명인 교도와 늘 함께다 보니 아내 이름으로도 출입증이 있을 정도. 이제는 군종교구에서 간식비를 지원해줘 부담이 한결 덜하다.

“첫째 성욱(법명 광욱, 중사)에 이어 둘째 성준(법명 성준, 하사)까지 군인이 되면서 군교화 꿈이 더 커졌어요. 고등학생인 딸(수연)도 기대하고 있고요. 어릴 때부터 병사들과 군법회를 보던 아이들이라 군대와 교단을 위해 제 몫 하리라 기대합니다.”

[2022년 6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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