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14년 전, 칠레로 발령을 받을 때 가장 먼저 챙겼던 건 목장갑이었다. “앞으로 교당을 만들어야 하는 곳”이라는 말에 ‘할 일이 많겠다’ 싶어 챙긴 물품이었다. 그땐 그 장갑이 고추를 닦는 데 쓰일 줄 몰랐다. 교당에서 먹을 고춧가루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 이것이 한인사회에 소문나면서 자연스레 칠레교당의 봉공 사업이 됐다.

칠레에서 10년, 브라질에서 4년, 남미에서 총 14년째를 살아가고 있는 조영명 교무(상파울로교당). 그가 현재 머무는 브라질은 남미에서 가장 큰 나라이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면적이 넓고,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2억1천만 명)다. ‘이 넓고 큰 땅에서 이 교법을 알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라는 생각은 그에게 해외교화를 하는 교역자로서 큰 보람과 자부심이다.
 

브라질 상파울로교당 조영명 교무
브라질 상파울로교당 조영명 교무

변화 경험은 곧 자신감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 이후 햇수로 6년 만의 귀국. 그 사이 브라질 역시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었다. 하지만 조 교무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상파울로교당은 현지인들이 먼저 자리를 잡은 후 한인들을 흡수하는 방향으로 교화 방향을 설정했다. 조 교무의 표현에 의하면 이는 ‘모험’이다. 현지인을 중심으로 하는 교화여야 그 나라에 원불교가 정착하는 데 더 용이하리라는 판단에서다.

홍보를 위해 교당 앞에 게시판을 만들고 법문을 게시하고…. 얼마나 흘렀을까, ‘오늘도 아무도 안오는구나’라고 생각하던 어느 법회 시간. 현지인 다섯 명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모두 게시판 법문을 보고 찾아온 인연이었다. 법문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니 법문을 전해주면 됐다. 

그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한 달 만에 대면 법회를 멈춰야 하는 상황. 그는 문자 법회를 개설했다. 그리고 원불교 교사 공부를 시작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문자 법회는 사진 자료와 동영상 자료를 충분히 공유할 수 있었다. 현지인들은 “공부 내용이 그대로 남아 있어 언제든지 다시 공부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조 교무도 교사로 원불교의 정체성과 정신을 전하면서 더 신심이 났다.

이후 정전 공부를 시작했을 때, 현지인들은 어느새 원불교의 독립적인 정체성을 인식하고 교법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불교와 원불교의 차이, 원불교는 어떤 종교인지, 일원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따로 필요치 않았다. 작년에는 5명이 무결석 출석상을 받았다. 

힘든 시간을 조 교무와 현지인들은 공부로 함께했다. 공황장애로 약을 먹던 사람이 약을 끊고 회복해가는 과정도 함께 지켜봤다. 한 줄 감사일기, 유무념 대조를 꼼꼼히 챙기는 이들도 생겨났다. 우리 교법으로 서서히 변화해가는 경험은 모두에게 자신감이 됐다.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훈련법을 곁들인 대면 법회를 진행해가고자 한다.
 

마지막 한류는 원불교
해외에 있다 보면 ‘여기가 어디지?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여기 왜 있어야 하지?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정체성 확인 질문을 스스로 자주 하게 된다. 그렇대도 공부가 안됐을 땐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덕분에 조 교무는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함께 공부하는 브라질 현지인들은 감사한 법연이다. “혼자서도 기쁘게 살 수 있지만, 이분들이 없으면 제 가치를 발현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일까. 그는 해외를 ‘정신적으로 전무출신으로서 보람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하며 해외교화를 독려했다.

또 그는 ‘마지막 한류는 원불교’임을 자신한다. 그때를 위해 ‘교법으로 일어서고, 삶이 변화되고, 체험으로 증명된 사례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마교당, 런던교당, 이스탄불교당 등이 만들어지는 꿈도 꿔본다. 아무것도 없어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씩씩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조 교무의 눈시울이 붉어진 순간이 있었다. 후원과 응원을 보내주는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해달라는 말에 답을 하면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집 문제도 해결되고, 공부하는 인연들을 만나 깊어졌어요. 한국에서 얼마나 염원을 해주시고 기원을 해주시길래… (눈물) 일이 이렇게 풀려가나 싶을 때가 많아요. 이런 기운을 받고 이런 응원 속에서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2022년 6월 13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