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학림·정산종사 탄생백주년 기념사업회 사무실로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정신원은 원기26년(1941) 팔타원 황정신행이 지은 사가이다. 아들 강필국의 수양을 위해 지었으며, 불법연구회 초대 회장인 서중안의 집터에 지었다. 서중안 일가는 원기12년(1927) 봄에 방 3칸, 부엌 1칸의 안채와 헛간채를 초가로 지어 생활했다. 원기15년(1930) 서중안이 열반하자 부인 정세월이 원기17년(1932)에 전무출신을 단행하면서 이곳에 의산 조갑종 부부가 살게 됐다. 이후 조갑종이 이사를 하자 황정신행이 초가를 헐고 목조기와를 지어 사용하다가 총부에 희사했다.

정신원은 황정신행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정신원은 일식주택의 영향을 받은 개량한옥으로 일식 목구조가 주된 구조다. 부분적으로는 한옥의 전통적 기법을 수용했고, 외관은 유리 미닫이문과 창호, 시멘트기와, 처마 끝에 함석차양을 한 근대주택이다. 건축 이후 내부 수리가 한번 진행되면서 공간에 변화가 생겼고, 건물 좌측에는 언제 축조됐는지 알 수 없는 별채가 추가 건립됐다.
 

정신원 본채 전경. 
정신원 본채 전경. 

본채는 ‘ㄱ’자형이며,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5칸, 면적은 97.68㎡로 1층과 반지하층으로 구성됐다. 1층 내부는 총 6개의 사무실과 2개의 화장실, 1개의 다락 공간이 있으며, 출입문 우측으로부터 두 번째와 세 번째 주 칸에 두 짝 미닫이문을 설치했다. 현재는 세 번째 주 칸만 주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별채는 정신원 본채 좌측으로 가깝게 붙어있다. 세로로 긴 장방형의 건물로,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1칸으로 면적은 26.01㎡이다. 본래는 정신원 본채 건물과 연결돼 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기단과 지붕만 연결돼 있다. 원기96년(2011)에 창호를 해체 보수했으며, 일부는 신자재로 교체했다. 

정신원은 원기31년(1946) 총부에서 유일학림이 개원되자 학림장과 학감의 사무실로 사용됐고, 원기33년(1948)에는 익산교당이 총부 교화부에서 분립해(익산교당의 시작은 중앙총부 직할교당이었다) 정신원을 임시교당으로 사용하며 대각전에서 법회를 열었다(익산교당은 이후 현 원광한의원-당시 동화의원- 자리로 옮겨 교화하다가 원기48년(1963) 12월 곽강련화 교도의 희사로 지금의 터에 교당을 마련했다). 
 

정신원 별채 전경. 본채와 별채의 지붕 부분이 연결돼 있다.
정신원 별채 전경. 본채와 별채의 지붕 부분이 연결돼 있다.

원기43년(1958) 5월 장수교당에서 교서편수기관인 정화사가 정산종사에 의해 발족됐고, 이후 원기45년(1960) 4월 총부 정신원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원기62년(1977) 정화사 해체 전까지 사용됐으며, 원기81년(1996) 정산종사 탄생백주년 기념사업회가 발족돼 사무실로 사용됐다.

황정신행은 여성 구인 제자이며, 재가교도로서 수위단원을 역임했다. 6.25한국전쟁으로 아들 강필국을 잃었고, 아들을 잃은 슬픔에 전쟁 고아들을 모아 보육원(현 한국보육원)을 설치해 돌봤다. 훗날 휘경학원과 사회복지법인 창필재단을(이공주와 함께) 설립했으며, 한국 고아의 어머니이자 대한민국 사회사업의 대모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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