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교무
김도현 교무

[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금강경』 6장에 법상과 비법상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법상과 비법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상(我相, ātmasaṁjñā)은 ‘아트만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생각’을 말하니, 법상(法相, dharmasaṁjñā)은 ‘어떤 법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생각’이라 할 수 있다. ‘법상이 없다’는 것은 ‘어떤 법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다.

비법상(非法相, adharmasaṁjñā)의 풀이에 주의해야 한다. ‘법’은 제법무아(諸法無我)에서와 같이 ‘모든 존재’라는 뜻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법을 부처님의 교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비법이라고 하면 부처님의 교법에 맞지 않는 것, 계율에 어긋나는 것, 진실을 막고 번뇌를 일으키는 생각 등으로 풀이하기 쉽다. 하지만 이렇게 풀이하면 무비법상(無非法相)이 ‘삿된 법을 고정불변하는 실체로 여기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는 뜻이 되어 『금강경』의 전체 문맥에 비추면 어색하다.

비법상은 삿된 법만이 아니라, 부처님의 법을 포함한 ‘어떤 법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생각이 그르다고 여기는 생각’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좋다. 그래서 수행자는 ‘어떤 법에도 고정불변하는 실체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하고 또한 ‘어떤 법이라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생각은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 마저도 놓아야 비법상까지도 놓은 것이 된다.

대승불교의 중관·반야 사상에서는 설일체유부로 대표되는 부파불교의 아공법유(我空法有)를 비판하면서 아공법공(我空法空)을 주장했고, 아공(我空), 법공(法空)과 함께 공공(空空)을 말했다. 아상으로 대표되는 사상(四相)을 여의면 아공을 성취하게 된다. ‘나’라는 개념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빌려서 형성된 허상이고 가상(假象)임을 명확히 아는 것이 아공이다.

법공은 무법상(無法相)을 얻은 것이니, 나만 없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성한다고 여겨지는 오온이라는 법도 역시 없음을 확인하면 법공을 성취하는 것이다. 비법상이 없으면 얻게 되는 공공은 필경공(畢竟空)이라고 한다. ‘없다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있음(有)’은 ‘없음(無 혹은 空)’의 상대개념이다. 있음을 상정하지 않으면 없음 또한 존재할 수 없다. 『금강경』에서는 있음에도 없음에도 머물지 않는 중도를 밝히고 있다. 본래 성품은 공하고 그 공한 가운데 묘유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나누어 설명하지만, 아상을 취해도 사상과 법상, 비법상이 이어서 일어나고, 비법상을 취해도 사상이 따라온다. 상이 없다는 것은 실상(實相)을 보는 지혜를 얻은 것이다. 이 지혜는 어떠한 집착도 용납하지 않는다. 소태산 대종사는 “수도인이 이 사상만 완전히 떨어지면 곧 부처라”고 했다. 이 말에는 ‘당신의 가르침에도 집착을 놓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지 않을까 한다.

/영산선학대학교

[2022년 6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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