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자온길, 지방 소도시 빈집에 예술·문화 담아
100년 된 한옥에서 열리는 공연 매회 매진 행렬
“오랫동안 변화되지 않을 문화거리 만들고 싶어”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100년 세월을 품은 한옥에서 매월 공연이 열린다. 백년이라는 역사 때문일까. 사람들은 서로의 무릎이 닿게 앉은 약간의 불편함까지 공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즐긴다. 그 순간, 오래된 역사가 현재 속에서 살아나 생생해진다. 부여 자온길이 담아내려는 꿈이 펼쳐지는 일면이다.
 

책방 세:간
책방 세:간

온기를 살리는 일
자온길은 ‘스스로(自) 따뜻해지는(溫) 길’이라는 뜻을 가졌다. 이제는 부여군 규암마을 일대를 칭하는 고유명사가 된 이 이름은 4년 전 박경아 ㈜세간 대표가 직접 지었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죽었던 마을에 온기가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낸 이름이다. 

과거에 술집만 60여 개가 있었던 곳이라니, 상권이 얼마나 큰 동네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백제교가 생기면서 상점과 마을은 점점 비어갔다. 박 대표는 이곳에서 전통문화와 공예라는 문화콘텐츠로 쇠락한 작은 마을을 다시 살리는 일(자온길 프로젝트)을 총괄한다. 

앞서 언급한 100년 세월을 품은 한옥은 이제 문화갤러리 ‘이안당’으로 불린다. ‘임씨네 담배가게’는 서점 ‘책방 세:간’으로 변신했다. 술을 팔던 요정 ‘수월옥’은 동명의 카페가 됐다. 작고 오래된 집을 개조해 만든 ‘더테이블’에서는 부여의 건강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담은 파스타를 맛볼 수 있다. 멸실 신청되어 사라질 뻔했던 오래된 ‘작은한옥’에서는 숙박이 가능하다.
 

이안당과 박경아 대표.
이안당과 박경아 대표.
수월옥

100년 지속될 문화거리
시작은 ‘오랫동안 변화되지 않는 문화적인 거리를 만들고 싶다’는 한 마음이었다. 어릴 적부터 전통공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미 대학 4학년 때 인사동 쌈지길에 가게를 열고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북촌, 서촌, 삼청동, 헤이리 등까지 확장하며 소위 잘 나가는 전통 공예가의 삶을 살았다. ‘아름다운 것들(전통공예)’을 알리고 삶에 쓰임 있게 하는 일은 보람과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예술 거리가 조성되고 나면 어느 순간 월세가 천정부지로 뛰었고, 대기업이 거리를 장악했다. 예술가들이 만든 거리에서 예술가들은 결국 쫓겨났다. 직물 1㎝를 베틀로 한 시간 걸려 짜던 한 후배가 무심히 말했다. “한 달에 50만원만 벌어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그 말이 마음을 울렸다. ‘100년이 갈 수 있는 문화 거리를 만들자’는 생각은 그때 본격화됐다.

그는 지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부여 소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에게 부여는 애정과 이해가 높은 곳이었다. 백제의 수도, 백제는 디자인적으로 훌륭한 국가, 공예가들에게 관직을 허락해줬던 유일한 국가, 세계적인 무역이 시작된 곳이라는 스토리도 그의 꿈과 들어맞았다. 무엇보다, 버려져 빈 공간이 많았다.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지방에 문화적인 거리를 조성하겠다는 그의 말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서점을 하겠다고 하니 “시골에 무슨 서점이냐”고 했다. 카페도, 공연에도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문화적인 것이 동반되지 않으면 이 프로젝트가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서점을 열고, 카페도 만들고, 공연도 추진했다. 북토크도 하고 플리마켓도 했다.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할 일을 만드는 게 자온길의 활력을 살려내는 방법이라 여긴 것이다. 게다가 서울에서는 공연이나 북토크 등의 문화가 그냥 일상이지 않던가. 그 일상을 지방에서도 실현해보고 싶었다.

이를 박 대표는 “모든 일은 무모함에서 나온다”고 표현하며 웃었다. 결론적으로 ‘소도시에 문화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데 적극 공감한 뮤지션들은 초대에 기꺼이 응해줬고, 김장훈, 브로콜리너마저, 마이앤트메리 등 유명 뮤지션의 공연을 보기 위해 전국의 20~30대들이 부여와 자온길에 찾아왔다.
 

마을 전체가 쇼룸
오래된 공간, 지방의 소도시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 하지만 박 대표는 그곳만이 가진 가치에 주목한다. 오래된 공간이 가진 힘도 믿는다. 공간 하나하나를 만들 때, 헐지 않고 복원하는 길을 선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은 ‘쇼룸’ 그 자체다. 이곳에서는 커피도 파스타도 도자 작가가 만든 그릇에 담기고, 현대적인 공연이 한옥에서 열림으로써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던 그가 “종교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을 덧붙인다. “종교도 그래요. 과거에 하던 대로가 아니라 젊은 세대가 뭘 원하고 좋아하는지를 생각하고 접근해야죠.”

4년 전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자온길’은 이제 카카오지도에서 검색되는 유(有)한 길이 되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세세곡절한 노고와 어려움이 있었고, 때로는 후회가 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걸음을 멀리 본다. 

“‘(상점) 5개가 생기면 30개가 생길 수 있다’고 해요. 하나하나 우리가 지키고 만들어가다 보면 새로운 것들이 함께 생기고 살아나겠죠. ‘지방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삶’의 모델로서 자온길이 그 역할을 하고 싶어요.”
 

♣ ‘100년 더The 공간’은 오래됐지만 가치 있는, 또는 소멸 되고 쇠퇴해가는 것을 다시 꺼내 살려내는 공간, 마음,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이다.

[2022년 6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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