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인범 한국스포츠멘탈훈련센터 대표
우인범 한국스포츠멘탈훈련센터 대표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말의 이름은 ‘카스톨’이었다. 한때 날렵하게 장애물을 넘었던 카스톨은 나이를 먹고 실력이 녹슬었다. 함부로 못 올라타던 카스톨은 이제 아무나 탈 수 있는 연습마가 됐다. 털은 빛을 잃어 푸석했고 눈은 텅 비어있었다. 막 승마장 교관이 된 우승범 마장마술선수(속명 인범, 원남교당)는 카스톨을 보자마자 “마음이 죽어있구나” 알아차렸다.

승마장엔 마음이 죽은 개도 있었다. 잉글리쉬펍독 ‘대두’는 무슨 사연인지 늘 귀와 꼬리가 처진 채 우울해했다. 우 선수는 대두의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 자신이 죽은 마음으로 여기에 왔다. 해군장교가 되기를 바랐으나 21세라는 이른 나이에 부상으로 뜻을 꺾어야 했다. 학교도 그만두고 방황하던 그에게 부모님(우신성·조경윤 교도)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아는 사람이 승마장 하는데, 말이라도 타볼래?”
이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한다는 승마. 레슨비를 제외하고 말을 키우는 데만 한달에 최소 60만원 든다는 고급스포츠다. 늦은 나이의 그는 경력도 그만한 재력도 없었으나 그저 말이 좋았다. 

말을 맡겨두고 주말에만 타는 ‘학생선수’가 아닌, 승마장에서 말을 돌보며 연습을 하는 ‘승마장 교관’의 길을 선택했다. 일순 삶 전체가 변했으나, 마음 하나는 다독다독 잘 챙겨갔다.
 

승마장의 마음 친구, 말과 개와 나
“카스톨과 대두와 제가 친했어요. 저에게 얘네들은 짐승이 아니라 불성이 있는 존재였죠. 친구처럼 같이 다니고 자주 안아줬어요. 앞발로 찍거나 뒷발로 난리를 쳐도 제압하기보다는 왜 그런지 들으려 했어요. 그랬더니 카스톨 마음이 살아나더라고요. 마음공부와 우리 교법의 위력을 느꼈어요. 선수와 교관으로서 자신감도 생기고요.”

그야말로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가 된 둘. 함께 훈련을 시작했고, 은퇴했던 카스톨을 기어이 경기장에 세운다. 젊고 쌩쌩한 말들을 제친 기적의 우승. 이때부터 우승범 세글자에는 ‘다 끝난 말들을 살려낸다’는 수식이 따라 붙었다. 

“말은 아주 영리한 동물이에요. 유치원생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죠. 뭘 잘못했는데 바로 혼내지 않으면, 다른 말들이 그걸 보란 듯이 따라 해요. 그러다 보니 타는 사람과의 교감과 신뢰가 정말 중요해요. 제가 긴장하면 같이 긴장하고, 두려워하면 같이 두려워 하는 거죠.”

그의 비법은 『정전』 무시선법에서 배운 부동(不動). 특히 비바람이 부는 날, 컨디션이 안 좋은 날, 무시선법을 활용하기 좋았다. 원학습인성교육에서 배운 집중력과 소통도 그를 만든 힘이다.

“보통 집에서는 잘해도 시합 나가서는 실수하거든요. 근데 저는 대회에서 더 잘했어요. 경기장에 들어가면 부동을 지키며 무심하게 해요. 어떻게 했는지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마치죠.”

파죽지세의 그는 단 5년 만에 7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 대회에서 두 말로 우승과 준우승을 한 적도 있었다. 은퇴했거나, 모두가 타는 승마장의 말로 이룩한 쾌거였다. 
 

은퇴한 말도 살려 우승 휩쓴 전 마장마술선수
경기력 및 자력 높이는 비법 ‘상시응용주의사항’
“운동선수 멘탈관리 및 스포츠폭력 해결 이끌 것”

말 위에서 2만 시간, 이제는 보은할 때
“우승도 좋고 말과 함께 사는 것도 좋지만 교당에 못 나가는 게 힘들었어요. 어느 날 인대를 다치고 선수 생활을 돌아봤더니 말 위에서 2만 시간 넘게 있었더라고요. ‘이 정도면 전문가는 됐겠다. 이제 원불교에 어떻게 보은하지?’를 고민했죠. 그때 시민선방 우산 최희공 종사님께서 학교에 가라고 권유해주셨어요. 두 마음 없이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무한 경쟁 속에 살아야 하는 운동선수의 삶. 그렇게나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연습했으나 1, 2위만 기억된다. 그가 봤던 혹독한 스포츠 현장에는 교법이 필요했고 마음공부가 요구됐다. 스포츠계에 제생의세를 펼쳐보겠다 생각했다. 어느샌가 솟아난 전무출신의 서원도 순풍 되어 마음을 밀어주었다.

“교법대로 하면 틀림없이 선수들의 경기력이 높아집니다. 운동은 감독이나 코치에 대한 의존도가 커서 실전에서도 눈치 보거나 휘둘리는 경우가 많아요. 허나 마음에 자력이 서면 오롯이 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죠. 멘탈관리를 통해 선수들이 행복하게 운동하게 하고, 만연한 폭력 분위기도 해결하고 싶습니다.”
 

말 대신 교법을 타고 세상을 바꾼다
그는 이제 한양대 박사과정 학생이자 한국스포츠멘탈훈련센터 대표로 활약 중이다. 선수들을 대상으로 멘탈훈련, 심리상담, 인성교육을 펼치는 그. 그의 든든한 무기는 교법이다.

“상시응용주의사항 하나하나가 모두 경기력을 높이는 전략입니다. 수행하다 보면 화낼 일도 없고 판단력도 좋아져요.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죠. 공부도 운동도 딱 내가 한만큼 나온다는 진리를 아니까 편안하고요.”

그의 팁들은 비단 운동선수에게만 국한할 게 아니다. 모든 것을 잊고자 음주가무 하기보다 좌선과 염불로 스트레스 풀며 과거 복기하기, 농구선수라면 농구 전반, 즉 내 분야 제대로 알기, 내 시합 모습을 1인칭, 3인칭 이미지트레이닝 하기 등등. 그는 이제 말 대신 교법을 타고 세상을 바꾸려는 참이다.

말엔 불성으로 대하고 경기엔 부동으로 임하며 교법엔 오직 진심을 다하는 우리 시대 귀한 청년. 초록성성하게 달릴 앞날이 기대된다.

[2022년 6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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