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상쾌하고 다부진 마음은 스무 걸음만에 사라졌다. 아, 이렇게 빨리? 하는 순간 발뒤꿈치에서 찌릿 통증이 올라온다. 때는 2001년, 해남에서 통일전망대까지의 국토대장정 첫날이었다. 

위기는 2일 차 아침이었다. 무려 20대 초반이었지만 사지는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모두 피노키오가 되어 절뚝거렸다. 발의 물집이 성가셨고 허벅지가 쓸렸고 땀으로 앞이 안 보였다. 셋째 날 쯤 되니 그나마 길 모양이 보이고 밥 때에 배가 고팠다. 좀 걸을 만 해진 건 4일째였다. 

‘하이고 힘든 거 다 겪고 멈추셨네!’ 양원석 강원교구장의 3박 4일 도보기도 순례 소식을 듣고 그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홀로는 얼마나 더 힘들 것인가. 매 순간 그만두고 싶은 천만 가지 핑곗거리와 어떻게 싸웠을까.

“내가 어느새 서원 없는 사람을 미워하고 있더라. 생각해보니 내 서원이 없으니 자비심이 없는 거였다.” 그는 머리로 깨치는 데만 머물지 않았다. 서원을 바루기 위해 두 다리를 길 위에 세웠다. 130km의 걸음이 그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무얼까. 나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 없으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 다짐부터가 내게, 강원교구 교도들에게, 전 교단에게 감동이라는 것. ‘상시훈련으로 교도들을 찌고 있는’ 강원교구가 그의 기도 정성을 못 볼 리 없다. 그의 서원과 정성을 사은이 모를 리 없다. 춘천교당은, 강원교구는, 원불교는, 세상은 탄복할 것이며 응답할 것이다. 무섭고 매서운 신성은 이처럼 그 주변부터 멀리까지를 감응시킨다.

언제부턴가 페이스북에 한 교무의 기도문이 뜬다. 교무인 줄도 몰랐으나 한결같았다. 얼마나 꾸준했냐면, 페이스북에 안 들어가는 동안 둘째 낳고 복직한 뒤 비번을 되찾아 들어갔는데 그는 여전히 기도하고 있었다. ‘하늘이 응할 수 있기까지 기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박원중 교무다. 늘 내 폰을 기도로 물들이는 그, 그가 곧 내 교당이요 내 교무 아닌가.

재능과 실력을 법문으로 담아내는 안세명 교무의 ‘만 번의 감사, 만 번의 행복’도 1726번째에 이른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원불교 SNS는 ‘우리동네좌포이야기’로, 송재도 교무가 교당 살림을 알뜰살뜰 잘도 담아낸다. 블루베리 농사며 개구리, 원친 ‘송 간사’ 등 이야기도 맛깔난다. 

간절하고 꾸준하게. 이것이 무릇 범부들이 기대하는 종교인의 모습이요 종교의 본질이다. 큰 산과 같은 정성과 세월을 넘는 적공을 누가 이길까. 천하제일 내 교무 대회에 내보내고픈 교무가 있다. 여기, 간절하고 꾸준한 내 교무들이 있다.

[2022년 6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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