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훈 교무
길도훈 교무

[원불교신문=길도훈 교무] 원불교 좌선법은 ‘누구라도 편안하면서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좌선법대로 하려고 하면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재미도 없고 진전도 없이 힘들기만 하니 하고 싶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 <정전>의 좌선법이 글자 수가 얼마되지 않는 총론으로 이루어졌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초심자가 가져야 할 것에서부터 이상적인 자세와 호흡과 마음까지 모두 담겨 있는 이 총론을 초심자가 한꺼번에 모두 소화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무모한 과욕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좌선의 방법은 단전주선으로 심신 피곤한 사람이든 몸이 불편한 사람이든 모두가 편안하면서도 쉽게 하는 데 있다. 핵심인 단전에 마음이 사는 것으로 선정에 들 수 있는 길 외에는 호흡과 자세는 부차적이다. 이 호흡과 자세는 좌선을 잘하면 그에 맞게 되는 한편, 좌선을 오래 건강하게 하기 위한 의미에 그친다. 

원불교 좌선법이 반드시 단전주선이라야 한다면 이것도 법박이다. 필수조건이 아닌 권장사항으로 보아야 한다. 소태산 사고의 기저에는 본질이 살아있다. 어떻게 좌선을 하든 원적무별한 진경에 들면 좌선으로써 그만이다. 이런 사고를 뒷받침 하는 소태산의 가르침에서 ‘열 사람의 법을 응하여 제일 좋은 법으로 믿으라’하며 교당이 없는 곳에서는 심지어 다른 종교라도 가서 배우라 했다. 가장 좋은 법은 비교 우위에 있는 법을 뜻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에게 가장 맞는 법 또는 자기의 수행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법이기도 하다. 단전주선이 건강하고 깊이와 힘 있는 선정으로 가는 탄탄한 길이니 단전주선을 권하나, 자신의 특성상 다른 길로 우회해서 오는 것도 괜찮다고 하는 것이다.

단전주선을 할 때는 자신의 심신 상태와 수행 정도를 알아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결정하고 필요한 것부터 해야 한다. 단전주선으로 먼저 해보되 잘 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자신의 특성을 살펴 여러 최적의 방법을 찾아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궁극인 선정에 드는 길이어야 좌선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단전주선의 경로는 쉬는 선으로 출발해서 단전에 마음이 스며들고 숙성되어 선정에 이르는 길이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 심신 휴식과 건강부터 다스려야 할 사람, 또는 와선·행선으로 선이 잘되는 사람, 빛이 잘 뜨는 사람 등 특성이 도드라진 사람은 그에 맞게 선정에 들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선의 깊은 경지에 이르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전주선을 제대로 해서 얻는 건강과 선정의 깊이와 힘에 이르기는 드물다. 단전주선으로 깊은 경지에 이르면 단전주선 외의 방법은 한번만 해봐도 된다. 뿐만아니라 다른 수행법도 그 선의 허와 실을 아는 것은 물론이고 선정으로부터 이어지는 깊이를 알기에 사람에 따른 최적의 길을 일러줄 수도 있다.

[2022년 7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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