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위기감은 아직도 느슨하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 지 10여 년이 지났다. 상업화되고 세속화 된 종교현상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라고 지탄했다. 2년 여 전에 밀어닥친 코로나19 팬데믹은 불신 가득한 종교계의 위축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종교 없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행복해했고, 팬데믹의 불행 앞에서 종교가 해줄 역할도 딱히 없었다.

올해, 코로나19의 엔데믹(풍토병화) 시대를 맞으면서 종교들은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2년 여의 펜데믹 시대를 지나오면서 사회현상은 급격히 디지털화로 탈바꿈하고 개별성의 시대로 전환되었다. 대중모임을 발판으로 성장한 현대종교 현상에서 본격적인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길 잃은 종교들이 길 없는 길 위에서 방황하는 시대를, 우리는 지나고 있다. 

기성종단보다 더 심각한 게 군소종교라 할 수 있다. 미약한 교세현상에서 교도수의 급감은 패배의식을 부채질 할 수 있다. 우리 원불교 역시, 엔데믹 시대를 맞이하고 6개월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교단 지도부 차원에서나,  원불교 학자들 혹은 학회차원에서나, 또 교정 정책을 이끌어가는 중앙총부 차원에서 이 문제를 심각히 논의하는 장을 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단은 지난 해 내부적인 갈등으로 인해 교단혁신특별위원회를 탄생시켰다. 이를 중심으로 교단 혁신의 길을 찾기로 합의한 상태다. 그리고 혁신위원들을 중심으로 원불교 혁신과제를 선정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교단의 전반적인 논의가 ‘멈춰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혁신이 핑계가 되어 당장의 위기를 회피한다면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들은 그동안 교단의 정체현상에 있어 코로나19를 핑계 삼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엔데믹과 거의 비슷한 시점에 발족한 혁신특위가 다시 또 무겁고 산적한 교단 문제들을 회피할 좋은 핑계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금의 종교위기는 단순히 원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변혁은 종교 무관심과 탈종교화를 부추기고 있다. 당장 한국사회의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시대 그리고 물질 우선주의와 여가중심의 생활변화 역시 종교와 멀어지는 지름길이 되고 있다. 현대인들은 그래서 그들의 생활패턴을 맞춰주는 새로운 종교를 원하고 있다. 

혁신이 요술방망이가 아닌 이상에야, 종교 전반의 문제로 부상한 종교위기의 강을 건네주는 뗏목이 되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더 우려스러운 건, ‘세상을 바라봐야 종교가 보이는’ 현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만을 바라보며, 우리만의 리그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지금 우리는, 각자가 모두 위기의 고개를 넘기 위해 헐떡이는 숨을 감내해야 할 때다. 새 피가 돌기 위해서는 심장이 뛰어야 한다.

[2022년 7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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