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목도양조장, 전통 방식 그대로의 전통주 4종 주조
지난 10년은 앞으로의 100년 위한 투자와 준비의 시간
문화공간으로서 책임 느껴… “문화를 마시게 하겠다”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100년 동안 묵직히, 술 익는 냄새가 한결같다.

일주일에 딱 300병. 요즘은 전통주도 기계화와 대량화가 일반화되었건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전통 방식 그대로 술을 빚어 탄생시킨다. 고두밥을 찌고, 전통재래식 누룩과 일본식 누룩에 직접 만든 효모를 섞어 발효하고, 생산된 술을 병에 담아 스티커를 입히는 전 과정이 온전히 ‘수제’로 이뤄지는 이곳. 목도양조장의 100년은 그렇게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1920년 창건, 1931년 창업
목도양조장에 들어서면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서까래가 그대로 남아있는 근대식 ㄷ자형 건물이 그렇고, 몇십 년의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는 창틀이며 각 실별 표지판이 그렇다. 여기에 사입실(발효장) 출입문에 쓰인 ‘외인출입엄금’이라는 오래된 글씨는 엄중한 재미까지 더한다. 양조장을 찾은 이를 위해 100년을 차곡차곡, 번갈아 안내하는 유기옥·이석일 부부. 이들 표현에 의하면, 부부는 ‘양조장 도슨트’다. “30분짜리, 1시간짜리, 원하는 시간에 맞춘 설명이 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더한다.

이곳의 역사에는 흥미로운 포인트가 몇 있다. 먼저 1920년으로 거슬러 간다. 등기부등본상 기록에 의하면, 1920년 츠치모토 류우키치(土本高吉)라는 일본인이 이곳에 공장 허가를 받는다. 후에 남편 이 씨의 집요한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은, 츠치모토가 일본 기후현 출신의 양조인이었다는 사실이다. 1931년에 창업해 당시 술도가를 운영하고 있던 유 대표의 할아버지이자 1대 창업주인 유증수 씨(괴산주조주식회사)가 1937년에 이곳을 매입한 일을 우연하게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부부는 “창건은 1920년, 창업은 1931년”이라고 목도양조장을 설명한다.
 

보전할 가치가 있다
수도권에서 생활하던 부부가 괴산에 내려오게 된 건, 내셔널트러스트 문화기행에서 촉발됐다. 아내를 따라 2012년 군산-강경 코스 문화답사에 참여한 이 씨는 오래된 문화를 자원화해낸 모습에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렸다. ‘언젠가 전원생활을 한다면, 이곳이겠지’ 싶었던 처가집 풍경이 예사롭지 않게 와닿은 것이다. ‘전원주택으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보전할 가치가 있겠다.’ 이 씨는 유 대표를 설득했고, 그렇게 부부는 2013년 8월에 괴산으로 내려왔다. 

당시 이 씨는 대학병원 의사로 근무 중이었다. 주 5일 꼬박 일하고 금요일 오후면 내려와 술을 공부하고 만들고 판매하고 배달했다. 달리 표현하면, 주중과 주말이 따로 없는 삶이 10년째라는 뜻이다.

선대의 역사를 지키고 오랜 문화를 살려보고자 돌아온 고향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미 많은 양조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가운데, 목도양조장 역시 진배없는 상황이었다. 마을에서는 ‘저들이 3개월 못가서 포기할 것’이라는 말이 왕왕 터져 나왔고, “힘들면 양조장을 팔라”는 유혹도 못지않게 이어졌다. 

그럴수록 부부는 선대의 역사를 더 깊이 살폈고, 전통주 개발과 연구에 전념했다. ‘누룩을 얼마만큼 담았다, 일본식 누룩을 몇 프로 증감해 봤다, 그때 맛은 어땠다’ 등의 내용을 기록한 두꺼운 노트만도 여러 권. 그 결과 새 제품 개발에도 성공했다. 작은 개인 양조장에서 무감미 약주를 만드는 것은 대단한 성과라는 게 업계의 평이다. 부부가 제조, 생산, 유통까지 직접 다 해내기에 더 많은 양을 만들 수도 없어서, 이곳의 전통주는 소량 수제 생산으로 희소가치가 높다. 
 

100년을 위한 100년
부부는 “술을 팔기 위해 술을 만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돈보다도 보이지 않는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더 크게 여기기에 술에 근현대 100년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담아낸다. ‘문화를 마시게 하겠다’는 꿈도 넌지시 비춰본다. 

양조장 내 모든 공간을 오픈하는 이유도 다름 아니다. 많은 이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것.

이에 올해 들어 반가운 소식이 연거푸 전해지고 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백년소공인에 선정되고, 충북도청으로부터 양조장과 부속건물(한옥 주택과 창고)이 등록문화재로 예고된 것이다. 판매장의 역할을 하기도 했던 창고는 현재 시음장으로 활용되는데, 방문자들은 공간이 가진 이야기 속에 머묾으로써 양조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한 번 더 머금고 음미한다.

지난 10년은 앞으로의 100년을 위해 정신·육신·물질을 모두 투자해온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이 일로 큰돈 벌 생각은 하지 않는다. “너무 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어요. 술이 너무 잘 팔렸다면 ‘제2공장을 지어야 한다, 시설을 더해야 한다’ 하면서 원형을 훼손할 수밖에 없었겠죠”라며, 오히려 지난 시간에 고마워한다.

2년 반 동안 코로나19가 세상을 잔뜩 움츠리게 하는 때에도, 이곳은 큰 흔들림이 없었다. 이유가 있을 터. “날씨 영향은 받아도, 코로나 영향은 받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주말 날씨만 확인한다”며 웃던 부부가 가장 보람 있는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눈시울을 붉힌다.

“이곳을 찾아온 분들이 ‘100년을 지켜주어 고맙다. 잘 보존해줘서 고맙다’고 할 때, 그 때 가장 기뻐요. 그 말 한마디가 힘든 이 일을 계속 하게 하는 원동력이고, 보람이에요.”
 

♣ ‘100년 더The 공간’은 오래됐지만 가치 있는, 또는 소멸 되고 쇠퇴해가는 것을 다시 꺼내 살려내는 공간, 마음,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이다.

[2022년 7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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