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해 기자
장지해 기자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다른 종교 언론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많이 오는데요, 다 안 했어요. 그런데 원불교신문이라고 해서… ‘원불교’니까 오시라고 한 거예요.”

한두 달 사이, 취재를 위해 만난 한 이웃 종교인과 원불교 바깥의 어느 장인에게서 똑같은 말을 들었다. ‘원불교니까.’ 짧은 다섯 글자의 여운이 길다. 덕분에 시간을 거슬러본다. 

언론기관에서 활동한 지 10년. 그간 수많은 이웃 종교인들과 원불교 바깥의 사람들을 만나왔다. “원불교 잡지사인데요” 또는 “원불교 신문사인데요”라는 소개와 함께 취재(또는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거절당한 적은 인터뷰이의 건강상 이유로 딱 한 번, 그 외에는 없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 스스로도 신기했고, 주변에서도 늘 신기해하며 물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결론은 최근에서야 명확해졌다. 내가 ‘원.불.교’에 소속돼 있는 덕분이다. 원불교 구성원이 아닌 이에게 시간을 얻는 일, 이건 개인 ‘장지해’를 보고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원광’이나 ‘원불교신문’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내 이름보다도, 내가 근무하는 매체의 이름보다도 더 먼저 언급되는 ‘원불교’가 있어 성사되는 일들이다. 순전히 ‘원불교’라는 세 글자가 가진 힘이다.

우리는 스스로 ‘작은 종교’라 말한다.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고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때때로 위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생각보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원불교’를 안다. 그리고 ‘원불교’에 많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원불교’라는 타이틀이 있어 이웃 종교인들이나 원불교 바깥의 사람들이 흔쾌히 시간을 내주고, 만남을 가능케 한다. 그들은 ‘원불교’가 세상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더라며, 원불교를 향한 칭찬을 나에게 대신 건네기도 한다. “원불교가 참 좋은 일을 많이 하던데… 어떻게 그 일을 다 해낼까,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요.” 아마 그는 작은 규모와 힘이지만 뚜벅뚜벅, 세상을 위한 역할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실현해내는 원불교 사람들을 보았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취재를 가면 “이웃 종교의 이야기를 원불교 매체에 담아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어느 대상에게도 열려있는 자세는 원불교만의 또 다른 힘이다.

정작 우리가 잘 모르는 우리의 힘, 원불교가 가진 힘은 생각보다 크다. 신뢰가 높고, 열려있고, 긍정적인 그 힘을 잘 살려가자. <미생>이라는 드라마에 나왔던 대사 한 줄을 빌려 표현해본다. “잊지 말자. 원불교는 나의 자부심이다.”

[2022년 7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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