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리치몬드교당 김계성 교무
미국 리치몬드교당 김계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낯선 곳에서 혼자 살아가야 했지만, 크게 두렵지 않았다. 비록 몸은 혼자이지만 뒤에 늘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이 있으니 자신감이 있었고, ‘일원대도 교법을 천하 만국 만민에게 전하겠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렇대도 지난 시간이 어디 만만했을까. 돌아보니 어느덧 16년째, 김계성 교무(리치몬드교당)의 표현에 의하면 ‘눈 깜짝할 새’다.

“미국 교화 역사는 50년에 이르지만 미국에서 원불교는 아직 ‘스타트업’ 단계”라고 말하는 김 교무. 하지만 그는 앞으로의 시대에 더 절실히 요구될 정신이 우리 교법에 담겨있음을 확신하기에, 미국교화의 희망을 크게 본다.
 

경제 자립 서원
‘경제 자립.’ 16년 전 해외로 발령을 받으며 김 교무가 세운 서원이다.

해외교화에 있어 자신감의 원천이 된 대산종사의 법문이 있었다. ‘무슨 방법으로든지 정신의 자주력, 육신의 자활력, 경제의 자립력 이 세 가지 자력만 갖추어나가면 세상에 모든 사람이나 물건이나 온 천하가 다 나를 돕는 물건이 될 것이니라.’

이 법문에 바탕해 김 교무는 세탁소에서 바지와 셔츠를 다리는 일, 픽업스토어 운영, 식당 서빙, 발레파킹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교당 경제의 자립력을 세워갔다. 힘이 들 때가 어찌 없었겠냐마는, 왜인지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개인의 호화로운 삶을 위한 고생이 아니었고, 이 법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6년 만에 교화에 용이한 지역으로 교당을 옮길 때도, 그는 대부분을 자력으로 해결했다.

경제활동을 할 때 그는 ‘킴벌리’라 불린다. 그와 함께 일해 본 이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킴벌리는 보통 사람과 좀 다르다”고. 교무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무언가 다른 그 느낌이 행동으로 나타나고 마음으로 전해지는 모양이었다. 손님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늘 가장 많은 팁을 받았다. 공고를 내지 않았음에도 알음알음 찾아와 교당에서 하숙을 하는 아이들도 벌써 서른 한 명에 이른다. ‘뭔가 다른’ 기운 덕분일 것이다.
 

수행을 통한 교화
김 교무는 학생 시절부터 선(禪)과 수행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다양한 수행법을 경험해봤고, 그중 태극권(타이치)은 지금까지 꾸준히 하는 수행 중 하나다. 그는 이것을 현지인 교화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서구 사회의 무빙 메디테이션(Moving Meditation·動禪) 붐을 따라 실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태극권 수업 요청이 꾸준했다. 선과 명상을 좋아하는 현지인들을 위해 그는 태극권과 기공을 교화 방편으로 삼아 동선(動禪)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현재 15~20명의 현지인이 꾸준히 참석한다. 그 인연으로 입교한 현지인들도 하나둘 생겼다.

그에게 있어 수행은 정신의 자주력과 육신의 자활력을 함께 기르는 중요한 요소다. 남모르는 독공을 통해 쌓은 정신의 자주력이 여러 순간들을 견디고 극복하게 하는 힘이 됐다. 열심히 살면 반드시 응답이 있다는 것을 자신이 경험했기에, 그는 후배들에게 ‘수행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혼자가 아니더라
정말로 덩그러니, 혼자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물리적 환경이 그랬을 뿐, 무언가 큰일을 당할 때마다 김 교무는 ‘함께’의 힘을 실감했다. 어느 날 태풍으로 인해 큰 나무 한 그루가 교당 지붕으로 쓰러졌을 때도 그랬다. 소식을 전해 들은 성기윤 미주동부교구장이 15시간을 달려 교당에 찾아왔다. 미국지역 교무님들이 모은 7천9백 불(한화 약 1천만 원)을 가지고.

나무가 쓰러진 위치는 하숙하는 학생의 방이었다. 그런데 천만다행, 방학이었다. ‘사은님 감사합니다!’가 절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뿐인가. 나무가 지붕을 더 누르지 못하도록, 옆집 할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나무 밑동을 잘라주었다.
이 이야기를 어느 교무가 교역자광장 게시판에 대신 올려줬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마음이 모였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님’을 실감한 것이다. 한국에 있는 지도교무(서명선)의 끝까지 믿어주는 마음도 큰 힘이었다.

4년 전부터는 이수빈 교무(기간제 전무출신)와 함께 교화를 하고 있다. 교당을 이전하고 올해로 10년째. 김 교무는 ‘10년이면,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구나’를 자주 상기한다. “이제 제 서원은 후배들이 이 교당에서 교화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는 거예요. 그게 제 남은 역할이라 생각해요.” 

[2022년 7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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